‘아이콘을 만지다’를 만들기까지
서해웅
2년 전쯤 지인의 소개로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이라는 곳에서 촉각책 자문위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신기하기도 했고 독자들에게 유익하기도 할 것 같아서 몇 자 적어 본다. 어쩌면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촉각책 ‘아이콘을 만지다’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가 받은 인상들을 이야기하겠다.
먼저 촉각책이 어떤 것인지 먼저 알려드려야겠다. 촉각책은 점자책과는 다르다. 손으로 만져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촉각책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각종 디자인들을 시각장애인들도 만져서 알 수 있도록 고안한 책이다.
‘아이콘을 만지다’라는 촉각책은 최근 ‘포노 사피엔스’라고 불릴 만큼, 우리가 익숙해진 스마트폰 안에 있는 아이콘들의 모양을 촉각 이미지로 만든 다음 점자와 확대글자로 설명을 덧붙여 놓은 책이다. 굳이 그런 아이콘까지 시각장애인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시각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책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자문회의는 두 달 간격으로 네 번 열렸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세 번째 회의 도중이었다. 세 번째 회의에는 우리가 논의한 책을 직접 만들기로 한 디자이너가 참석하여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의의 주된 안건은 책에 쓰일 종이의 재질을 만져 보고 나서 정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샘플들을 만져 보고 위원들 모두 동의하는 재질로 책을 제작하기로 했다. 논의를 거의 마칠 때쯤 오늘 처음으로 참석한 디자이너가 말을 꺼냈다.
“제가 예전에 맹학교에 강의를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시각장애인 초등학생에게 빨간색이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질문을 받고 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그 질문을 듣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정말 당황했습니다. 색깔에 대해 시각장애인에게, 한 번도 색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방법을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이 나왔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비장애인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색깔에 대해 궁금해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도 색을 본 적이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색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 계신 위원님들 중 혹시 이 질문에 대해 답해 주실 분 계신가요?”
디렉터가 위원들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아무리 생각을 짜내 보아도 뭐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도 비장애인으로서 또 디자이너로서 그 질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색깔이란 게 그냥 당연하게 눈에 보이니까 생각하고 말고 할 거리가 아니었던 거죠.”
디자이너가 난색을 표하는 위원들을 보며 공감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자문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문회의에 참여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자문회의를 하기 전까지 내게 ‘설정’ 아이콘은 그냥 텍스트 ‘설정’에 불과했다. 아이콘의 모양이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계문명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톱니바퀴를 설정의 아이콘 모양으로 사용한 디자이너의 인문학적 고찰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앱을 디자인하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것들을 비장애인들과 같이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만큼 다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쉽지만 그럴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을 허무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방법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누리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 8. 1. 제103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