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친구
이진규
옛날 어느 마을에 자린고비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수 아래 자린고비가 고수 자린고비에게 한수 배우려고 찾아갔다. 옛날엔 남의 집을 방문하려면 들어가기 전에 쪽지에다 이름과 방문목적을 써서 먼저 들여보내야 했다. 그런 절차를 밟은 후 두 사람은 사랑방에 마주 앉았다. 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면 혼자 올 것이지 소와 개와 닭은 왜 데리고 왔소?”
“소는 뭐라도 얻어 싣고 가려는 것이고, 개는 혹시 내가 변이라도 보면 우리 개를 먹여야지 남의 개를 먹이겠소? 그리고 닭은 이 집 마당에 있는 벌레라도 잡아 먹이려고 데리고 왔습니다.”
“아, 그 정도시면 나한테 더 배울 게 없겠소이다. 자 이만 돌아가시오.”
“어허, 이대로 가면 내가 손해인 걸. 아무튼 가겠으니 아까 들여보낸 쪽지는 내 종이이니 돌려주시구려.”
그러자 고수는 별수 없다는 듯 그 사이에 이미 풀을 발라 뚫어진 문구멍을 막아 두었던 종이를 떼어 주면서 말했다.
“종이는 예 있소. 허나 거기에 붙은 풀은 내 풀이니 날 주고 가시오.”
위와 같은 두 고수만큼은 아니래도 내 친구 중에는 자린고비로 불릴 만한 지독한 구두쇠가 하나 있다. 이 친구와 식당에 가면 그는 처음부터 밥 한 공기를 더 시키는데 얼마나 빨리 먹는지 우리가 반쯤 먹을 때 어느새 두 공기를 다 먹어치우고 슬그머니 일어나 먼저 가버린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얻어먹을 기회가 있을 때 잔뜩 먹어 두어야 집의 쌀을 절약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밥값은 우리 차지다. 때마다 으레 그래 온 것이라 우리는 누구도 그런 그의 절약 습관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제 생일에는 빠지지 않고 친구들을 집으로 청하는데, 그 집에 가면 소변을 보고 나서 물을 누르면 물 저장통이 비어 있어 언제나 그냥 달그락 소리만 난다. 다섯 사람 정도 소변을 보고 나서야 한 번 물을 넣어 배수시키기 때문에 평소에는 항상 수도를 잠가 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아껴 모은 돈을 어느 날 한 순간 사기를 당해 통장에 있던 돈을 몽땅 털린 적이 있다는데, 그 얘기를 듣노라면 안타까우면서도 제법 흥미롭다.
어느 날 시골에서 오는 친구를 마중하러 서울역에 나가서 서성대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 친구가 노숙자로 보였던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묻더란다.
“여권이나 주민증이 있으면 파시오. 당신은 분실했다고 다시 발급받으면 되니까 아무 문제는 없지요.”
그 말에 솔깃한 친구가 물었다.
“주민증 하나에 얼마 주는데?”
“최고 가격이 30만 원인데... 30만 원 드리지.”
“35만 원 주면 팔지.”
“그럼 내 먹을 게 없는데, 33으로 합시다.”
“좋소.”
“현찰이 없으니 계좌를 부르시오.”
그렇게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잠시 후 입금 확인을 하고 주민증을 건네주는 순간, 어디서 형사 둘이 덮치더니 주민증을 압수하고 그 남자를 양쪽에서 제압하고 말했다.
“꼼짝 마라, 우리는 형사다. 오늘은 현장을 제대로 잡았군.”
그리고 입금을 증거로 확인해야 하니 통장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내 친구에게 말했단다. 그래서 친구는 엉겁결에 비밀번호를 불러주었는데, 형사 하나가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당신도 죄가 되니 이놈을 취조할 동안 30분 정도 다방에서 기다리다 역전파출소로 오시오.”
그리하여 친구는 그들이 파출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혼자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30분쯤 지나 파출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파출소에는 그들의 행적도 행방도 전혀 없었다.
“웬 남자 셋이 급히 들어오더니 곧장 옆문으로 빠져 나갔어요.”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그제야 아차 싶어 통장을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통장에는 원래 있던 제 돈 구백만 원은 물론 방금 입금한 돈조차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잡아간 놈이나 잡혀간 놈이나 짜고 치는 한 패거리 사기단이었다.
그런 일을 당한 뒤로 내 친구는 돈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단다. 돈이란 알뜰살뜰 아낀다고 모아지는 게 아니라 중국 사람들처럼 일단 내 주머니에 들어 온 돈은 내 주머니에서 결코 안 빠져 나가도록 마음의 열쇠를 단단히 채워야 된다고...
(2019. 5. 1. 제102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