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당교
류재성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동묘(관운장을 모신 사당) 앞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한 아파트는 30층 중 29층이어서 청계천이 내려다보이고 서울 시내가 환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지하철역하고 바로 연결되어 있어 비나 눈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시각장애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삼각지에 있는 직장도 지하철역과 접근성이 좋아서 통근하는데 편리하여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한강은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그 지류인 청계천과 양재천은 동쪽으로 흐르는 역수로 그곳에 사람들과 돈이 모인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동대문시장이나 강남이 번창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여기에 편승해서 괜히 부자가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자가 된다면 언제 부자가 될지 알고 싶어져 풍수지리나 기문둔갑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어느 날, 운동도 할 겸 청계천에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22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순서대로 모전교, 광통교, 광교,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마전교, 나래교, 버들다리, 오간수교, 맑은내다리, 다산교, 영도교, 황학교, 비우당교, 무학교, 두물다리, 고산자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광통교, 수표교 등 몇 개는 들어본 것도 같은데, 22개나 되는 이름을 기억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자꾸 가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청계천을 거니는 것도 좋았지만 다리들의 유래를 아는 것도 흥미로웠다. 여러 다리 중 비우당교의 담긴 이야기를 듣다가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비우당은 조선 세종 때 청백리 3대 정승인 황희, 맹사성 중 한 명인 하정공 류관 선생의 집이고, 비우당교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다리를 의미한다. 내가 하정공 류관의 21대손이기 때문에 관심이 확 쏠렸다. 하정은 류관의 호이다.
류관 선생이 퇴임하여 이 근방에서 살았을 때는 담도, 울타리도 없고, 문도 없는 초막집이었다. 그는 늘 감사와 자족, 그리고 청빈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낡은 초막집에 살면서 비가 오는 날에는 방안에 우산을 펴고 천장에서 새는 비를 가렸다는 이야기는 청빈한 그의 삶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일화다.
이후에 하정공의 6대 외손인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 선생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비우당’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비우당에서 ‘비우’란 말은 집안에서 우산을 펴고 새는 빗물을 가리는 청빈을 뜻하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다리가 비우당교였다.
그 일대의 도로는 ‘하정로’라고 불리며, 주변에는 우산각 공원 등 하정공의 유적지가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왠지 조상의 얼이 담긴 곳을 산책하는 것 같아서 새삼 마음이 뿌듯했다.
평소에 문화 류씨로서 ‘이름을 부를 때 성에 리을을 꼭 넣어서 불러달라’고 하다 보니 성에 대해서 좀 관심이 있었고, 아버지로부터 하정공파라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하정공은 누구인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조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문화 류씨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문화 류씨의 시조는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보급하여 삼한벽상공신에 제수되고 대승 벼슬을 했던 류차달이다.
문화 류씨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차씨에서 분화되어서 차유달이라는 형이 있었고, 차유달의 동생 류차달이 문화 류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직도 연안 차씨와 함께 차류종친회를 한다. 이것을 알고 나니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차류종친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학기마다 받았던 기억이 났다. 한편, 1880년 안동권씨 성화보가 발견되기 전까지 ‘문화유씨가정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문화라는 지명은 황해도 신천군의 일부였던 지명이었고, 조선 태조 계비 신덕왕후로 유명한 신천 강씨 집안과는 이웃이기도 하다.
류관 선생이 우의정을 지내셨다고 해서 조선시대의 정승을 찾아보니 우의정과 좌의정은 너무 많아서 영의정만 찾아보았다. 조선시대 영의정으로는 연산군 때 류순, 선조 때 류전, 태종 때 류현연, 숙종 때 류상운, 영조 때 류봉휘, 문화 류씨의 분파인 풍산 류씨 중 선조 때 류성용 등이 있었다. 류씨 가문의 인물 중 근래에 활동했던 분은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환박사가 대표적인데 회사를 2세에게 상속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운영하도록 하는 본보기를 보인 훌륭한 분이시다. 하정공의 청렴함과 조선시대 영의정의 현명함과 유일환 박사의 통찰력을 본받는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청계천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산책로 자체로도 훌륭한 공간이다. 한여름에는 분수와 다리 밑이 시원하고, 종종 콘서트도 열릴 뿐만 아니라 산책 때마다 반겨주는 오리 소리가 정겨움을 더해주는 곳이다. 가끔씩 청계천에 나와서 제기동까지 걷곤 하는데, 다리의 수를 세거나 징검다리를 건널 때면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지만 모두 건너면 뭔가 성취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길이 좁고 불편해 시각장애인이 다니기에 친절한 길은 아니다. 그래도 자연의 풍취와 조상의 얼을 느껴보는 이곳이야말로 내 마음을 정화하고 뿌듯함을 주는 삶의 안식처가 아닌가 싶다.
나도 조상들처럼 훗날 역사의 한 무대를 장식하여, 이름을 남기고 유적지 같은 것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주변의 상황과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내 주변의 역사적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쓰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한강은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그 지류인 청계천과 양재천은 동쪽으로 흐르는 역수로 그곳에 사람들과 돈이 모인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동대문시장이나 강남이 번창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여기에 편승해서 괜히 부자가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자가 된다면 언제 부자가 될지 알고 싶어져 풍수지리나 기문둔갑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어느 날, 운동도 할 겸 청계천에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22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순서대로 모전교, 광통교, 광교,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마전교, 나래교, 버들다리, 오간수교, 맑은내다리, 다산교, 영도교, 황학교, 비우당교, 무학교, 두물다리, 고산자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광통교, 수표교 등 몇 개는 들어본 것도 같은데, 22개나 되는 이름을 기억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자꾸 가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청계천을 거니는 것도 좋았지만 다리들의 유래를 아는 것도 흥미로웠다. 여러 다리 중 비우당교의 담긴 이야기를 듣다가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비우당은 조선 세종 때 청백리 3대 정승인 황희, 맹사성 중 한 명인 하정공 류관 선생의 집이고, 비우당교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다리를 의미한다. 내가 하정공 류관의 21대손이기 때문에 관심이 확 쏠렸다. 하정은 류관의 호이다.
류관 선생이 퇴임하여 이 근방에서 살았을 때는 담도, 울타리도 없고, 문도 없는 초막집이었다. 그는 늘 감사와 자족, 그리고 청빈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낡은 초막집에 살면서 비가 오는 날에는 방안에 우산을 펴고 천장에서 새는 비를 가렸다는 이야기는 청빈한 그의 삶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일화다.
이후에 하정공의 6대 외손인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 선생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비우당’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비우당에서 ‘비우’란 말은 집안에서 우산을 펴고 새는 빗물을 가리는 청빈을 뜻하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다리가 비우당교였다.
그 일대의 도로는 ‘하정로’라고 불리며, 주변에는 우산각 공원 등 하정공의 유적지가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왠지 조상의 얼이 담긴 곳을 산책하는 것 같아서 새삼 마음이 뿌듯했다.
평소에 문화 류씨로서 ‘이름을 부를 때 성에 리을을 꼭 넣어서 불러달라’고 하다 보니 성에 대해서 좀 관심이 있었고, 아버지로부터 하정공파라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하정공은 누구인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조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문화 류씨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문화 류씨의 시조는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보급하여 삼한벽상공신에 제수되고 대승 벼슬을 했던 류차달이다.
문화 류씨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차씨에서 분화되어서 차유달이라는 형이 있었고, 차유달의 동생 류차달이 문화 류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직도 연안 차씨와 함께 차류종친회를 한다. 이것을 알고 나니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차류종친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학기마다 받았던 기억이 났다. 한편, 1880년 안동권씨 성화보가 발견되기 전까지 ‘문화유씨가정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문화라는 지명은 황해도 신천군의 일부였던 지명이었고, 조선 태조 계비 신덕왕후로 유명한 신천 강씨 집안과는 이웃이기도 하다.
류관 선생이 우의정을 지내셨다고 해서 조선시대의 정승을 찾아보니 우의정과 좌의정은 너무 많아서 영의정만 찾아보았다. 조선시대 영의정으로는 연산군 때 류순, 선조 때 류전, 태종 때 류현연, 숙종 때 류상운, 영조 때 류봉휘, 문화 류씨의 분파인 풍산 류씨 중 선조 때 류성용 등이 있었다. 류씨 가문의 인물 중 근래에 활동했던 분은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환박사가 대표적인데 회사를 2세에게 상속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운영하도록 하는 본보기를 보인 훌륭한 분이시다. 하정공의 청렴함과 조선시대 영의정의 현명함과 유일환 박사의 통찰력을 본받는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청계천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산책로 자체로도 훌륭한 공간이다. 한여름에는 분수와 다리 밑이 시원하고, 종종 콘서트도 열릴 뿐만 아니라 산책 때마다 반겨주는 오리 소리가 정겨움을 더해주는 곳이다. 가끔씩 청계천에 나와서 제기동까지 걷곤 하는데, 다리의 수를 세거나 징검다리를 건널 때면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지만 모두 건너면 뭔가 성취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길이 좁고 불편해 시각장애인이 다니기에 친절한 길은 아니다. 그래도 자연의 풍취와 조상의 얼을 느껴보는 이곳이야말로 내 마음을 정화하고 뿌듯함을 주는 삶의 안식처가 아닌가 싶다.
나도 조상들처럼 훗날 역사의 한 무대를 장식하여, 이름을 남기고 유적지 같은 것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주변의 상황과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내 주변의 역사적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쓰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2018. 11. 15. 제101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