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배 금지’
최명남
모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이었다.
“할머니, 아빠가 담배 피워요. 담배는 나쁘다고 했는데, 말도 안 들어.”
해를 더 할수록 대결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성분이 어떻고, 유해 물질은 어쩌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어쩌지? 담배를 거부하지 못하겠는걸. 대신 술은 안 먹잖아. 좀 봐주면 안 되겠니? 따님아. 좀 봐 주세요.”
아빠의 너스레가 우스웠던지 까르르 웃는다. 늘 한결같은 대응이지만 그래도 한참은 조용하다. 그렇게 잠잠하다가 또 시작이다.
“할머니, 아빠 또 담배 피운대요. 좀 혼내주세요. 나는 말도 잘 듣는데 혼내고, 맴매도 하면서. 왜 아빠는 말을 안 들어도 야단도 안치고 때리지도 않는 거야? 왜 아빠랑 나랑 차별하는 건데. 할머니도 그러시는 거 아니야. 할머니 먼저 때찌때찌를 해야 되겠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니까, 매를 맞아야 해.”
쉴 새 없이 쫑알쫑알, 투덜대며 따지는 데는 나도 할 말이 없다.
하기야 벌써 여섯 해 전에 시작된 소모전이 이젠 아예 둘의 놀이가 되어 심심하면 지분지분 시비를 건넨다.
“할머니, 이번에는 아빠가 잘 보이게 하얀 종이에다 매직펜으로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일까? 아니면 복도에 붙일까. ‘단배 금지’ 이렇게.”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면, 폐가 병이 나서 기침도 나오고, 그러면 많이 아파서 병원에도 가야 한다고 하셨어. 친구들이랑 영상을 보고 무서워서 울었어. 아빠가 담배 피우니까, 아프면 어떡해! 이 세상에 담배가 없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울던 아이는 금세 명랑해졌고, 나 역시 잊어버렸다. 퇴근한 아들이 아이를 끌어안고 크게 웃었다.
“아빠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리 딸. 그런데 ‘단배 금지’가 뭐야. 담배 금지라고 쓰는 거야.”
그제야 화장실 문에 ‘단배 금지’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얀 종이에 삐뚤빼뚤하게. 어린 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불안하였으면, 그랬을까. 이런 생각에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또다시 같은 이유,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왕래하는 바람에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랬었는데 사르르 코끝으로 내려앉는 냄새에 잠이 깨었다.
새까만 담배 바람에 익숙한 이 내음은 부지런한 누군가의 소행이려니! 궁금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잠든 아이를 조용히 더듬어 본다. 부드러운 숨결이 닿는 순간 웃음이 터져,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랬다. 아들은 창밖 먼 곳에다 눈을 두고 망연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흠뻑 젖은 이슬에 싱그러운 풀냄새, 흙냄새가 아닌 백해무익한 향기를 뿜어내면서.
“엄마, 감기 들면 어쩌려고.”
아들이 들어와서 창문을 닫아준다.
“무슨 말씀 하실지 아니까. 하여간 안 하시면 안 될까? 담배가 해로운 건 나도 다 알아. 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마음대로 안 돼서 그래. 엄마, 미안해. 끊을 때가 있겠지.”
이때 아이가 말참견을 한다. 아니 협박에 가깝다. 오늘은 다짐을 받으려는 태세다. 손가락 걸고, 사인도 하고, 복사까지 하자고 매달린다.
약속은 하지 않겠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니까. 어기면 안 되니까. 등등. 결국 알았어. 대신 조금만 피워. 이렇게 부녀간의 소모전은 승산 없이 끝이 나고 만다.
이것이 요즘 우리 집의 풍경이다. 아무튼 아들은 이제 전자 담배로 바꿨고. 손녀는 오늘도 금연 신문을 만들어 학교에다 제출해야 한다며 분주하다. 상을 받겠다는 꿈을 품고서.
“할머니, 아빠가 담배 피워요. 담배는 나쁘다고 했는데, 말도 안 들어.”
해를 더 할수록 대결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성분이 어떻고, 유해 물질은 어쩌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어쩌지? 담배를 거부하지 못하겠는걸. 대신 술은 안 먹잖아. 좀 봐주면 안 되겠니? 따님아. 좀 봐 주세요.”
아빠의 너스레가 우스웠던지 까르르 웃는다. 늘 한결같은 대응이지만 그래도 한참은 조용하다. 그렇게 잠잠하다가 또 시작이다.
“할머니, 아빠 또 담배 피운대요. 좀 혼내주세요. 나는 말도 잘 듣는데 혼내고, 맴매도 하면서. 왜 아빠는 말을 안 들어도 야단도 안치고 때리지도 않는 거야? 왜 아빠랑 나랑 차별하는 건데. 할머니도 그러시는 거 아니야. 할머니 먼저 때찌때찌를 해야 되겠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니까, 매를 맞아야 해.”
쉴 새 없이 쫑알쫑알, 투덜대며 따지는 데는 나도 할 말이 없다.
하기야 벌써 여섯 해 전에 시작된 소모전이 이젠 아예 둘의 놀이가 되어 심심하면 지분지분 시비를 건넨다.
“할머니, 이번에는 아빠가 잘 보이게 하얀 종이에다 매직펜으로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일까? 아니면 복도에 붙일까. ‘단배 금지’ 이렇게.”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면, 폐가 병이 나서 기침도 나오고, 그러면 많이 아파서 병원에도 가야 한다고 하셨어. 친구들이랑 영상을 보고 무서워서 울었어. 아빠가 담배 피우니까, 아프면 어떡해! 이 세상에 담배가 없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울던 아이는 금세 명랑해졌고, 나 역시 잊어버렸다. 퇴근한 아들이 아이를 끌어안고 크게 웃었다.
“아빠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리 딸. 그런데 ‘단배 금지’가 뭐야. 담배 금지라고 쓰는 거야.”
그제야 화장실 문에 ‘단배 금지’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얀 종이에 삐뚤빼뚤하게. 어린 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불안하였으면, 그랬을까. 이런 생각에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또다시 같은 이유,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왕래하는 바람에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랬었는데 사르르 코끝으로 내려앉는 냄새에 잠이 깨었다.
새까만 담배 바람에 익숙한 이 내음은 부지런한 누군가의 소행이려니! 궁금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잠든 아이를 조용히 더듬어 본다. 부드러운 숨결이 닿는 순간 웃음이 터져,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랬다. 아들은 창밖 먼 곳에다 눈을 두고 망연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흠뻑 젖은 이슬에 싱그러운 풀냄새, 흙냄새가 아닌 백해무익한 향기를 뿜어내면서.
“엄마, 감기 들면 어쩌려고.”
아들이 들어와서 창문을 닫아준다.
“무슨 말씀 하실지 아니까. 하여간 안 하시면 안 될까? 담배가 해로운 건 나도 다 알아. 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마음대로 안 돼서 그래. 엄마, 미안해. 끊을 때가 있겠지.”
이때 아이가 말참견을 한다. 아니 협박에 가깝다. 오늘은 다짐을 받으려는 태세다. 손가락 걸고, 사인도 하고, 복사까지 하자고 매달린다.
약속은 하지 않겠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니까. 어기면 안 되니까. 등등. 결국 알았어. 대신 조금만 피워. 이렇게 부녀간의 소모전은 승산 없이 끝이 나고 만다.
이것이 요즘 우리 집의 풍경이다. 아무튼 아들은 이제 전자 담배로 바꿨고. 손녀는 오늘도 금연 신문을 만들어 학교에다 제출해야 한다며 분주하다. 상을 받겠다는 꿈을 품고서.
(2018. 7. 15. 제100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