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아울러 더 기다려지던 제비
조재훈(전 한빛맹학교 교장)
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무리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도 온갖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또 기다려지는 것이 있었다. 제비였다.
흥부의 이야기에서처럼 보물이 주렁주렁 열릴 박 씨를 물고 올 것을 기다려서일까? 해충을 잡아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제비는 지저귀는 소리만 들어도 활기를 돋우게 하였다.
제비는 그 모습부터 사람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날씬한 몸매에다 균형도 잡혀있고 또렷한 눈매와 흑색의 날개는 품격까지 갖추고 있다. 서양인들이 연회 때 귀부인들은 화려한 드레스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신사들은 제비 꼬리를 닮은 연미복을 차려입는다. 만능의 재주를 자랑하려는 마술사도 대개 연미복을 입고 출연한다. 이러한 유명세 덕분에 ‘제비족’이라는 단어까지 탄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제비는 주먹만 한 크기 정도이지만 나는 속도는 어느 새보다 빠르다. 또 사람의 집에 거침없이 들어와 식구처럼 함께 살았다. 자기가 살 자리를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지도 않지만 거치적거리지 않는 적당한 곳에 집을 지어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중국의 바위 해안에 사는 제비가 해초를 물어다 침을 섞어 집을 짓는데 이것이 최고급 요리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제비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것도 언제부터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 출생한 서울의 아이들은 원래부터 제비가 없는 곳에 태어난 줄 알게 되었다. 산업시설이 급격히 늘어나고 도시가 확대되어 늘 같이 지낼 줄 알았던 제비들이 생활환경이 맞지 않는 서울을 슬그머니 떠나버린 것이다. 제비가 나타나지 않는 곳은 서울만이 아니다. 대도시일수록 제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깊은 시골 마을이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야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대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제비만이 아니다. 공작새나 꾀꼬리 구경하기도 힘들게 되었고, 그렇게 흔하던 참새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대도시의 아이들은 매미가 낮에만 울던 곤충이라는 사실도 전혀 모를 것이다. 기억으로는 1980년대 초만 하여도 인왕산 기슭인 우리 집에서는 낮에만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낮에만 울던 매미들이 대낮보다 휘황하게 된 전등 빛을 태양으로 착각했는지 밤을 지새우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그 시기를 확실히 모른다. 하기야 제비가 도시인의 눈에서 사라진 것이나 매미가 밤을 새우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리고 그까짓 장수풍뎅이나 쇠똥구리가 멸종되어간다고 하여 무슨 대수일까? 도시인들은 하루의 일과를 담당하기에도 어깨가 무겁지 않은가?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자연보호 운동가들이나 생물학자들에게나 문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세상이 하도 급변하여 이전에는 한 세기 즉 100년을 두고 달라지던 양상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변하고 있다. 그래서 ‘산천이 의구하다’던 시인 길재의 말이나, 자연은 불변하리라던 생각도 고쳐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환생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 곤충의 탈바꿈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일까? 사람이 사는 동안 업을 이루는 데까지 극락세계에 들게 되기도 하지만 축생으로도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개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유기견을 만나면 아버지를 공경하듯 정성으로 그 개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만 분석하면 칼슘, 철, 인 등 20가지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호랑이 몸에 들어 있던 원소가 사람에게 옮겨오고, 인체를 구성했던 물질이 개나 소로 바뀌어 형성된다 하여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또 이러한 믿음으로 모든 생태계를 자기의 분신이나 조상의 존재로 생각한다면 자연보호는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무속인이 어린 영혼의 극락환생을 위하여 큰 그릇의 밑에 등잔 같은 것을 밝히고 그 위에다 젖은 창호지를 덮은 다음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창호지에 제비 날개와 같은 검은 그을음이 나타났다. 무속인은 영혼이 제비로 환생하여 극락에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때의 모습이 하도 신기해 나는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어머니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셨다. 아니 바보 취급을 받을 만큼 착하셨다. 허기진 사람에게는 받았던 밥도 내주셨고, 빚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빚보증까지 서셨다. 따라서 내 고생이 더하였다. 머리가 차차 커짐에 따라 나는 어머니에게 반발하였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제가 지은 업은 제가 받게 되는 법이야,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불안해 깊은 잠을 못 자게 된단 말이야.” 스님의 선문답 같은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내게 이러한 어머니가 계셔서 비록 살림은 어려웠지만 세상 경험을 누구보다 더 깊게 할 수 있었다. 1991년 정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나는 고아가 된 것보다 더 큰 서러움을 맛보았다. 독방에서 이불을 쓰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런데 그해 어린이날 세종마을을 걷다가 제비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집에 오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왜 모자에 제비 똥이 있냐?”고 하였다. 제비 똥은 똥자루가 커서 잘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제비가 싸고 간 똥이 분명하였다. 나는 어머니께서 정말 제비로 환생하시게 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의 영혼이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제비를 본 내게 남긴 증표로 여기게 되었다.
흥부의 이야기에서처럼 보물이 주렁주렁 열릴 박 씨를 물고 올 것을 기다려서일까? 해충을 잡아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제비는 지저귀는 소리만 들어도 활기를 돋우게 하였다.
제비는 그 모습부터 사람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날씬한 몸매에다 균형도 잡혀있고 또렷한 눈매와 흑색의 날개는 품격까지 갖추고 있다. 서양인들이 연회 때 귀부인들은 화려한 드레스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신사들은 제비 꼬리를 닮은 연미복을 차려입는다. 만능의 재주를 자랑하려는 마술사도 대개 연미복을 입고 출연한다. 이러한 유명세 덕분에 ‘제비족’이라는 단어까지 탄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제비는 주먹만 한 크기 정도이지만 나는 속도는 어느 새보다 빠르다. 또 사람의 집에 거침없이 들어와 식구처럼 함께 살았다. 자기가 살 자리를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지도 않지만 거치적거리지 않는 적당한 곳에 집을 지어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중국의 바위 해안에 사는 제비가 해초를 물어다 침을 섞어 집을 짓는데 이것이 최고급 요리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제비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것도 언제부터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 출생한 서울의 아이들은 원래부터 제비가 없는 곳에 태어난 줄 알게 되었다. 산업시설이 급격히 늘어나고 도시가 확대되어 늘 같이 지낼 줄 알았던 제비들이 생활환경이 맞지 않는 서울을 슬그머니 떠나버린 것이다. 제비가 나타나지 않는 곳은 서울만이 아니다. 대도시일수록 제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깊은 시골 마을이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야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대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제비만이 아니다. 공작새나 꾀꼬리 구경하기도 힘들게 되었고, 그렇게 흔하던 참새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대도시의 아이들은 매미가 낮에만 울던 곤충이라는 사실도 전혀 모를 것이다. 기억으로는 1980년대 초만 하여도 인왕산 기슭인 우리 집에서는 낮에만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낮에만 울던 매미들이 대낮보다 휘황하게 된 전등 빛을 태양으로 착각했는지 밤을 지새우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그 시기를 확실히 모른다. 하기야 제비가 도시인의 눈에서 사라진 것이나 매미가 밤을 새우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리고 그까짓 장수풍뎅이나 쇠똥구리가 멸종되어간다고 하여 무슨 대수일까? 도시인들은 하루의 일과를 담당하기에도 어깨가 무겁지 않은가?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자연보호 운동가들이나 생물학자들에게나 문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세상이 하도 급변하여 이전에는 한 세기 즉 100년을 두고 달라지던 양상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변하고 있다. 그래서 ‘산천이 의구하다’던 시인 길재의 말이나, 자연은 불변하리라던 생각도 고쳐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환생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 곤충의 탈바꿈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일까? 사람이 사는 동안 업을 이루는 데까지 극락세계에 들게 되기도 하지만 축생으로도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개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유기견을 만나면 아버지를 공경하듯 정성으로 그 개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만 분석하면 칼슘, 철, 인 등 20가지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호랑이 몸에 들어 있던 원소가 사람에게 옮겨오고, 인체를 구성했던 물질이 개나 소로 바뀌어 형성된다 하여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또 이러한 믿음으로 모든 생태계를 자기의 분신이나 조상의 존재로 생각한다면 자연보호는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무속인이 어린 영혼의 극락환생을 위하여 큰 그릇의 밑에 등잔 같은 것을 밝히고 그 위에다 젖은 창호지를 덮은 다음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창호지에 제비 날개와 같은 검은 그을음이 나타났다. 무속인은 영혼이 제비로 환생하여 극락에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때의 모습이 하도 신기해 나는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어머니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셨다. 아니 바보 취급을 받을 만큼 착하셨다. 허기진 사람에게는 받았던 밥도 내주셨고, 빚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빚보증까지 서셨다. 따라서 내 고생이 더하였다. 머리가 차차 커짐에 따라 나는 어머니에게 반발하였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제가 지은 업은 제가 받게 되는 법이야,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불안해 깊은 잠을 못 자게 된단 말이야.” 스님의 선문답 같은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내게 이러한 어머니가 계셔서 비록 살림은 어려웠지만 세상 경험을 누구보다 더 깊게 할 수 있었다. 1991년 정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나는 고아가 된 것보다 더 큰 서러움을 맛보았다. 독방에서 이불을 쓰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런데 그해 어린이날 세종마을을 걷다가 제비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집에 오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왜 모자에 제비 똥이 있냐?”고 하였다. 제비 똥은 똥자루가 커서 잘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제비가 싸고 간 똥이 분명하였다. 나는 어머니께서 정말 제비로 환생하시게 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의 영혼이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제비를 본 내게 남긴 증표로 여기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