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소리가 함께하는 ‘북소리버스’
신혜령(동화구연가)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여기저기 행사도 많이 열리고,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다. 무슨무슨 책축제, 어디어디 아트홀 등. 내가 그런 행사장에서 하는 일은 ‘동화구연’을 통한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이다. 한국점자도서관의 ‘북소리버스(이하 북버스)’가 프로그램의 무대다.
‘동화구연’이란 동화책을 간단한 동작과 성대묘사를 활용해 읽어주는 활동이다. 흔히 ‘구연동화’랑 혼동해서 쓰는데, 강조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혼자나 둘이서 책을 읽으면서 자리에 서거나 앉은 채 하는 게 동화구연이다. 구연동화는 간단히 말해 그와는 반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보통 동화구연은 책 선정, 개작(이야기 바꾸기), 시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때 소품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대개 손가락 인형이나 방울 같은 작은 물건들이다. 여의치 않은 경우 책만 있어도 된다. 그러나 내가 진행하는 동화구연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비주얼’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북버스에서의 동화구연은 일단 ‘안대’를 꼭 쓰고 시작한다. 참고로 버스 안의 불도 끈다. 시각장애인의 느낌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동화구연 시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자극하는 ‘임팩트’를 쓴다. 낙엽 밟는 소리, 플라스틱 물병, 핸드크림, 물티슈 등. 별별 소품이 총출동한다. 덕분에 아이들의 반응도 뜨겁다.
“우와악, 얼굴에 뭐, 걸레 같은 거 닿았어!”
소품이 등장할 때마다 이런 ‘호응’이 따른다. 가끔 적당한 음향 효과를 입수하지 못하면 소리를 직접 채집하기도 한다. 동네 까마귀가 우는 날에 음원 채취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만큼 ‘까악!’ 하는 소리가 예쁘게 들린 적이 없다. 그 까마귀 효과음으로 아주 리얼한 현장감을 전했었다.
이런 준비를 거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론 그 전에 나와 보조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쑥떡 회의’를 한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는 딸기 향이 나오고요...”
“아, 잠깐만요! 메모해야겠어요.”
들어가는 소품이 많다 보니, 동화구연가 혼자서는 조금 벅차다. 그래서 스태프 선생님들이 백업을 해주신다. 키워드가 되는 문장이나 단어를 듣고 적절한 순간에 효과를 등장시키는 것. 듣는 아이들은 즐거워도 뒤에서는 이런 ‘공작’이 벌어져서 정신이 없다. 가끔 타이밍이 늦어서 효과가 ‘척하면 착’으로 못 나올 때는? 동화구연가의 에드립만이 ‘답’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보다 가장 큰 ‘변수’는 이용 고객님(아이들)이다.
프로그램을 하며 가끔, 아니 거의 매 회차 이런 아이들을 만난다. 미운 4살, 꿀밤 주고 싶은 7살, 당돌하다 못해 당혹스러운 초등학생 등등. 대개 한 그룹에 한둘은 꼭 이런 개구쟁이 녀석들이 끼어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들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편하게 눕거나 책꽂이를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활동성도 강해서 버스에서 쿵쿵 뛰기도 한다. 동화구연 후에는 촉각발판 걷기, 흰지팡이 보행하기, 촉각책 만지기 등의 체험을 하는데, 이때도 개구진 녀석들은 짖궂은 장난을 발휘한다. 귀엽기도 하고, 딱밤을 주고 싶기도 한, 그런 아이들. 1시간 수업이 제트기의 속도로 정신없이 지나간다. 4회 수업이니까 한 번 나가면 제트기를 네 번이나 타는 셈.
행사를 마치고 나면 체력적인 배터리가 방전되고 만다. 그래도 아이러니하게 나갈 때마다 즐겁다. 들떠서 버스를 타고 지쳐서 퇴근하지만, 다음 수업 일정이 잡히면, 또 흥을 내며 동화를 선정하고 온갖 소품을 궁리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얼핏 내보이는 ‘공감’이나, 서투른 ‘이해’의 반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인데 왜 눈 떴어요? 눈 떴는데 안 보이는 거예요?”
“선생님은 왜 선글라스 안 꼈어요?”
아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느낀 건데 ‘시각장애인 = 선글라스’라는 공식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 공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전맹이지만 알이 없는 컬러풀한 멋내기 안경을 꼭 착용한다. 빨강, 파랑, 보라. 시각장애인도 패션의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손으로 점자를 읽는 모습을 보고는 환성까지 지른다. 동화책이 라벨도서라, 아이들과 내가 동시에 볼 수 있다. 자기네들과 똑같은 내용을 읽는다는 것에, 눈이 아닌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다는 것에, 엉덩이가 의자 위에서 들썩거린다.
시각장애인은 너희와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본다고 설명해도 아이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북버스에서의 시간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떤 형태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정도로 스치듯 남을까? 세상에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단상이 남을까? 어떤 기억이 됐건, 이런 인식을 통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인식을 하게 되면, 보이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금쯤은 달라질 테니까.
동화는 동화이기에 읽힌다. 아름답고 선량한 이야기. 그러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그럼에도 동화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다투지 않고 서로 이해하는 사회. 그래서 오늘도 동화구연을 즐겁게 나간다. 백 마디 말보다 짧은 이야기와 체험으로 그런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동화구연’이란 동화책을 간단한 동작과 성대묘사를 활용해 읽어주는 활동이다. 흔히 ‘구연동화’랑 혼동해서 쓰는데, 강조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혼자나 둘이서 책을 읽으면서 자리에 서거나 앉은 채 하는 게 동화구연이다. 구연동화는 간단히 말해 그와는 반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보통 동화구연은 책 선정, 개작(이야기 바꾸기), 시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때 소품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대개 손가락 인형이나 방울 같은 작은 물건들이다. 여의치 않은 경우 책만 있어도 된다. 그러나 내가 진행하는 동화구연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비주얼’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북버스에서의 동화구연은 일단 ‘안대’를 꼭 쓰고 시작한다. 참고로 버스 안의 불도 끈다. 시각장애인의 느낌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동화구연 시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자극하는 ‘임팩트’를 쓴다. 낙엽 밟는 소리, 플라스틱 물병, 핸드크림, 물티슈 등. 별별 소품이 총출동한다. 덕분에 아이들의 반응도 뜨겁다.
“우와악, 얼굴에 뭐, 걸레 같은 거 닿았어!”
소품이 등장할 때마다 이런 ‘호응’이 따른다. 가끔 적당한 음향 효과를 입수하지 못하면 소리를 직접 채집하기도 한다. 동네 까마귀가 우는 날에 음원 채취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만큼 ‘까악!’ 하는 소리가 예쁘게 들린 적이 없다. 그 까마귀 효과음으로 아주 리얼한 현장감을 전했었다.
이런 준비를 거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론 그 전에 나와 보조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쑥떡 회의’를 한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는 딸기 향이 나오고요...”
“아, 잠깐만요! 메모해야겠어요.”
들어가는 소품이 많다 보니, 동화구연가 혼자서는 조금 벅차다. 그래서 스태프 선생님들이 백업을 해주신다. 키워드가 되는 문장이나 단어를 듣고 적절한 순간에 효과를 등장시키는 것. 듣는 아이들은 즐거워도 뒤에서는 이런 ‘공작’이 벌어져서 정신이 없다. 가끔 타이밍이 늦어서 효과가 ‘척하면 착’으로 못 나올 때는? 동화구연가의 에드립만이 ‘답’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보다 가장 큰 ‘변수’는 이용 고객님(아이들)이다.
프로그램을 하며 가끔, 아니 거의 매 회차 이런 아이들을 만난다. 미운 4살, 꿀밤 주고 싶은 7살, 당돌하다 못해 당혹스러운 초등학생 등등. 대개 한 그룹에 한둘은 꼭 이런 개구쟁이 녀석들이 끼어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들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편하게 눕거나 책꽂이를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활동성도 강해서 버스에서 쿵쿵 뛰기도 한다. 동화구연 후에는 촉각발판 걷기, 흰지팡이 보행하기, 촉각책 만지기 등의 체험을 하는데, 이때도 개구진 녀석들은 짖궂은 장난을 발휘한다. 귀엽기도 하고, 딱밤을 주고 싶기도 한, 그런 아이들. 1시간 수업이 제트기의 속도로 정신없이 지나간다. 4회 수업이니까 한 번 나가면 제트기를 네 번이나 타는 셈.
행사를 마치고 나면 체력적인 배터리가 방전되고 만다. 그래도 아이러니하게 나갈 때마다 즐겁다. 들떠서 버스를 타고 지쳐서 퇴근하지만, 다음 수업 일정이 잡히면, 또 흥을 내며 동화를 선정하고 온갖 소품을 궁리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얼핏 내보이는 ‘공감’이나, 서투른 ‘이해’의 반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인데 왜 눈 떴어요? 눈 떴는데 안 보이는 거예요?”
“선생님은 왜 선글라스 안 꼈어요?”
아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느낀 건데 ‘시각장애인 = 선글라스’라는 공식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 공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전맹이지만 알이 없는 컬러풀한 멋내기 안경을 꼭 착용한다. 빨강, 파랑, 보라. 시각장애인도 패션의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손으로 점자를 읽는 모습을 보고는 환성까지 지른다. 동화책이 라벨도서라, 아이들과 내가 동시에 볼 수 있다. 자기네들과 똑같은 내용을 읽는다는 것에, 눈이 아닌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다는 것에, 엉덩이가 의자 위에서 들썩거린다.
시각장애인은 너희와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본다고 설명해도 아이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북버스에서의 시간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떤 형태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정도로 스치듯 남을까? 세상에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단상이 남을까? 어떤 기억이 됐건, 이런 인식을 통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인식을 하게 되면, 보이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금쯤은 달라질 테니까.
동화는 동화이기에 읽힌다. 아름답고 선량한 이야기. 그러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그럼에도 동화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다투지 않고 서로 이해하는 사회. 그래서 오늘도 동화구연을 즐겁게 나간다. 백 마디 말보다 짧은 이야기와 체험으로 그런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