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법’ 시행 이후, 정부정책 그리고 나아갈 미래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점자 메뉴판이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관공서 등에서 점자로 된 안내책자를 제작 및 비치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관련 논의 및 연구,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단지 2016년 제정, 2017년부터 정식 시행된 ‘점자법’이라는 배경이 갖춰짐으로써 탄력을 받았다고 하겠다.
“점자는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며,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점자법 제4조)
사실 점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처음이라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해 정보소외계층 중 하나인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종종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지속적이지 않았고, 연속적이지 못했다. 점자 메뉴판만 해도 카페베네(2014년)의 전적이 있다. 결국 사후 관리 및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점자법’이 정식으로 시행되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향방은 다르지 않을까? 점자법 시행 이후, 새롭게 변모할 요모조모를 살펴본다.
* 시험에 개정 점자 적용, 응시자격도 달라져
지난 2017년, 뜨거운 논의 끝에 마침내 한글점자가 개정되었다. 2006년 1차 개정 이후 거의 10년 만의 일이다. 드문 사건인지라 한동안 시각장애인계의 이슈로 부상했었다. 작년에는 점역·교정사 자격시험에 적용되지 않았으나, 올해 2018년 상반기 제33회 자격시험부터는 정식 변경된다. 하지만 모든 과목 영역에 개정점자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국어와 영어, 두 과목만 해당된다. 각각 2017년 개정된 한글점자와 2015년 통일영어점자규정을 따른다. 한편 수학·과학·컴퓨터와 음악은 2019년 제35회 시험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변경되는 부분은 그뿐만이 아니다. 자격응시 요건도 변한다. 예전에는 시험 응시를 위해서는 1~3급 별로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었다. 20세 이상의 연령, 학력과 경력, 그리고 자격증 소지 여부 등이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이러한 제한이 사라진다. 또한 합격의 성패를 좌우하는 점수의 기준도 달라진다. 합격 점수는 기존 70점 이상에서, 60점으로 낮아진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장벽을 낮춤으로써 응시생들이 갖는 부담을 줄이고, 점자의 확산 및 인력 양성에 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며 올해 새로 변경된 점역교정사 민간자격의 관리·운영에 관한 규정의 취지를 밝혔다.
한편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국어와 수학 해설서를 간행하여 보급할 예정이다. 그리고 과학, 컴퓨터, 음악 분야의 점자 규정 일부에 대해서도 해설서를 준비하고 있다.
* 체계적인 점자 전문인력 교육과정 모색
점자 전문인력 및 점자 교육과정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려 한다. 지난 11월 28일,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 김영일 교수를 주축으로 전문가들이 함께했던 ‘점역·교정사 교육과정안 토론회(이하 토론회)’가 그 기류 중 하나이다. 점자 전문가의 배양 및 양성을 위한 방안 모색이 주요 쟁점이었다.
“교재와 자격제도는 있지만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 때문에 잠재적 학습자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 탓에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김영일 교수는 교육과정안에서 이렇게 연구 목적을 밝혔다. 그에 덧붙여 복지기관과 국가 관점에서의 문제점도 제기했다. 김 교수의 주장처럼 자격증 취득이 업무 수행 요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직무 수행의 전문성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각 기관에서는 신규 점역·교정사에게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곤 한다. 전문성을 겸비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인이나 기관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보접근권 개선 및 점자진흥 정책을 시행하려는 국가로서도 해결이 시급하다.
토론회에서 김 교수가 타개책으로 제안한 교육과정안은 ‘단계 및 수준별 온·오프라인 점자교육’이었다. 과목을 직무에 따라 점역사와 교정사로 나누고, 기초 단계, 검정 단계 및 실무 단계로 교육과정을 세분화한 것이다. 가령 기초 단계는 점자를 처음 학습하는 예비 점역·교정사가 대상이고, 검정 단계는 점역·교정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학습자, 실무 단계는 업무를 배정받은 실무자에게 맞추는 식이다. 교육과정안은 방법 면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는 혼합형이다. 물론 과정과 단계별로 온·오프라인의 비율이 다르다.
현장에서는 김 교수의 교육과정안이 체계적이고 환경을 잘 반영했다는 의견이 많다. 하상장애인복지관 박민규 교정사는 “시각장애인 비시각장애인의 유무를 떠나서 점자를 배우려는 동기는 다양하다”며 “직업, 개인적 학습 등 개인 성향이나 환경을 반영한 수준별, 단계별 교육안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교육과정안이 실제 적용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이러한 연구가 시각장애인은 물론 비시각장애인에게 점자와 점자 문화에 대해 알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도 거듭 숙고하고 있는 오늘의 정책 고민이 점자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 1. 1. 제99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