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의 인연(최인호의 ‘상도’를 읽고)
서해웅(공무원)
“형, 전 나중에 사업할 거에요!”
오랜 만에 만난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다가 동생이 호기롭게 말했다. 당찬 모습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월급쟁이처럼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실패할 확률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오랜 불황이 계속되는 시기가 아닌가? 문득 고등학교 때 보았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올랐다. ‘상도’라는 드라마였는데 조선후기 거상 임상옥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생에게 추천이라도 할 요량으로 책을 찾았더니 최인호작가가 쓴 ‘상도’라는 동명의 소설이 있었다. 남에게 책을 추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읽어보는 습관이 있어서 총 다섯 권으로 엮인 이 책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흔히 이것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부른다. 이야기 속에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소설 속에서 또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현실과 작품 내 소설이 이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대기업 회장의 일대기를 써 달라는 제의를 받고 그 회장이 존경했던 인물인 임상옥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임상옥이 살던 조선후기로 건너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먼저 임상옥은 실재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평안도 의주사람으로 인삼독점권을 획득하여 거상이 되었다’라는 정도로 한 줄 정도 언급되어 있다. 이 한 줄에서 시작하여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과 자료 수집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임상옥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청년 시절 ‘홍득주’라는 상인의 객점에 가서 무임금으로 일을 하였다. 아마도 이때는 지금과는 달리 부모의 부채를 자식이 갚아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포자기하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책임을 다해 나갔다. 다행히 홍득주의 눈에 들어 아버지가 남긴 빚을 다 갚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객점까지 내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대신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북경에 가서 인삼을 팔고 오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밀무역을 하고 오라는 말인데 임상옥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일행과 함께 북경으로 떠나게 된다. 이로부터 임상옥은 자신에게 닥친 온갖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여 마침내 조선후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상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남은 두 글자가 있었다. ‘인연'. 임상옥과 장미령과의 만남, 또 석숭 스님과의 산사에서의 생활,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켜준 동업자 박종일 이 모든 것이 인연이라는 말밖에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불가의 말처럼 어떤 이와의 만남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 책을 추천하면서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라! 내가 이 책을 너에게 주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러면서 나는 또 이 책을 통해 만난 임상옥과 나의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는 임상옥을 만났다. 상업에도 도가 있다는 말을 자신의 삶 전반에 걸쳐 보여준 사람, 내가 부러웠던 것은 물론 돈을 많이 벌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그런 자세였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도가 아닌가 싶다. 또 그의 사람 알아보는 눈도 배울 점이 많았다. 앞으로 나도 내 인생에 있어 좋은 롤모델을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