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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서지에서(김진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0-16 오후 4:25:01

조회수 2341

게시물 내용
제목 피서지에서(김진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0-16 오후 4:25:01 (조회 : 2341)

피서지에서
김진수(안마사)

  아내와 난 긴 시간 여행 끝이라 눈썹 끝에 매달린 피곤함을 억지로 비비며 바다로 향했다. 바닷가의 새벽 공기는 피서철인데도 제법 쌀쌀해 온 몸의 솜털이 빳빳하게 고개를 든다. 
  저 멀리 명멸하듯 보이는 묵호항의 불빛을 향해 죽지가 휘도록 건져 올린 꿈을 실은 듯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고깃배들이 회항하고 회색도시의 오염된 공기로 찌든 내 코끝에 갯내음이 감돈다. 일 년 동안 짭짤하고 신선한 이 냄새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이 느낌을 속 깊이 묻어 놓고 지루한 일상에 한 번씩 꺼내보려 갯바람에 나의 속내까지 헹구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어슴새벽인데도 바다는 술렁인다. 산실청을 준비하는 듯 오른쪽 파도가 발 빠르게 몰려다니고 왼쪽 하얀 손의 파도는 산고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듯이 바다를 끊임없이 부드럽게 쓸어준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갓밝이 끝으로 말려 올라간다. 진홍색 꽃물이 번져가듯 수면을 붉게 물들이다 바다를 가르는 불 아이의 나신에 감추어졌던 시간마디가 활기차게 돌아가는 그 장엄한 모습을 글로 옮겨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평은 갈기를 바짝 세우고 으르렁댄다. 애석하지만 구름층에 가리어진 희망의 끈을 던져놓고 내일을 기약하며 씁쓸히 민박집으로 돌아와 나는 피곤한 몸을 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배꼽시계의 반란으로 잠을 깨보니 하늘엔 무언가 예감하듯 낮게 깔린 검붉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바다로 들어가지 말라는 스피커 음이 귓전에서 사라지기 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정신없이 때린다. 앰뷸런스가 비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오고 동네사람들과 피서객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다. 우리도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가가 보았다. 중학생 쯤 돼 보이는 아이가 어머니 곁에서 새파랗게 질려 곧 쓰러질 것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들을 끌어안으며 울음 끝을 속으로 우겨넣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들 가족은 원래 여행지를 계곡으로 정하고 인척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는데 아들 녀석이 예전에 이곳으로 피서 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머지 시간은 바다로 가자고 아버지를 하도 졸라서 할 수 없이 이곳으로 왔단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수영실력을 뽐내며 곡예 하듯 파도를 타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될 즈음 큰 파도가 아이를 덮쳤단다. 빙 돌아나가는 물너울에 속수무책으로 딸려가는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혼신을 다해 아들을 뭍으로 밀어 놓고 힘이 빠진 아이의 아빠는 순식간 물살에 떠밀려 사라졌단다. 헬기가 뜨고 해경이 사람을 찾느라 사력을 다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실종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한 사람도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해안 마을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우리도 남은 일정을 새로 짜야 했다.
  아쉬움에 하룻저녁 더 묵어가기로 하고 짐을 대강 챙겼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풋고추, 애호박, 감자를 챙겨 한보따리씩 안겨 주신다. 처음에는 아주머니의 억센 억양이 강원도 말인지 이북 말인지 꽤나 낯설었는데 여름철만 되면 장모님처럼 푸짐한 인심과 사랑에 다른 곳에 휴가를 잡았어도 꼭 이곳으로 차머리를 돌려 거쳐 가기를 십오 년이나 계속 이어졌다.
  저녁 찬으로 이곳에서 잡히는 비단조개로 뽀얀 국을 끓이고 삼겹살을 굽는다. 숯불에 놓인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며 오그라드는 모양이 낮에 본 아이의 어머니의 가슴 같아 선뜩 고깃점을 집어 들지 못하자 일행들이 어서 먹으라고 성화다.
  삼삼오오 모여 저녁밥을 먹는 피서객들이 아직도 그 부자의 이야기로 분분하다. 아주머니가 주신 맵싸한 고추를 막장에 찍어 상추쌈에 곁들여 막걸리 한 사발에 그들 부자의 이야기를 잠재워 보려 하지만 가슴을 타고 내리는 막걸리가 알싸하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내심 서운한지 다가와 권주가를 불러주며 가실 때 해신당 공원 한번 들렸다 가이소 하며 얼굴이 발그레해 지자 너도나도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한번 씩 던져보지만 이내 이들의 시야는 먼 바다를 향한다.
  떠들고 웃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 되며 눈앞이 어지럽다. 지워보려 애쓰면 애쓸수록 컬러사진처럼 더 선명해진다. 뒤척이는 밤을 못 이겨 평상에 나와 보니 저 만큼 바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몸뚱이가 온통 까맣도록 땅을 구르다 뒹굴다 그래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가! 곤두박질치듯 뭍으로 달려와 제 몸을 던지고 가기를 얼마나 했을까! 제풀에 누그러진 바다가 잠잠해진다. 
  이튿날 해오름 무렵 백사장에 다시 섰다. 긴 모래톱에 물너울의 흔적이 X선에 찍힌 것처럼 선명한데 바다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연신 하얀 눈꺼풀을 내리 깔며 다소곳하다. 바다의 두 얼굴에 하늘도 파랗게 질려있고 갈매기 한 마리 긴 여운을 달고 끼룩끼룩 울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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