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인가?
김창민
나이가 들면 흔히 ‘하얀 거짓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때로는 외로워서, 어떤 때는 서러워서, 또 어떨 때는 아픈 몸이 괴로워서 또는 미안하고 쑥스러워서, 그렇게 웃음 반 넋두리 반의 푸념으로 늙으면 죽어야지를 되새기고 있다. 그런데, 이제 정말로 늙으면 죽어야 할 때가 왔다. 그것도 나이 들어 빛을 잃은 사람들에겐….
우리나라 현행법에는 65세 이후에 시각장애가 된 사람에게는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어있다. 똑같은 반 잔의 물 잔을 앞에 놓고 어떤 이는 아직도 반 잔이나 남았구나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았구나하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광주리에 담겨있는 사과가 매일 썩어가는 데 어떤 이는 매일 싱싱한 것만 가려먹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썩은 사과만 골라먹는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그 행위와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법의 테두리는 어떠할까. 법이란 만인 앞에 평등해야하건만 사람들은 공평하지 못한 법을 ‘악법’이라한다.
지금 방안에 갇혀 꼼짝을 못하다 보니 지난 일이 떠오른다. 66세에 갑자기 시력을 잃고 68세에 점자를 배워 방문 점자교사를 했을 때였다. 복지관에서 끝없이 많은 설득을 하여 누구라면 다 아는 사회 저명인사 집을 방문하였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이름이 난 집에서는 장애인이 생기면 숨기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집도 그중에 속한다. 대학 1학년 때 시각장애인이 됐다는 딸이 7년이 지났는데 지금껏 방안에 가두어 키운 탓으로 하체를 못 쓰고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험하고 더러운 저주의 욕설을 퍼붓고 떠났다.
나는 외출도우미 대신 가사도우미의 제도가 있기에 월 36시간의 정부 유료 도움을 받아왔다. 그런데 금년 들어 웬 날벼락이 닥쳐왔다. 난 출가한 외동딸에게 얹혀사는 아무 소득도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런 나에게 금년 정월에 딸의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많아서 가사도우미 혜택에서 제외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출가한 딸이 시각장애인 친정아버지를 돕기 위해 사회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땅을 딛고 활보하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집에서도 운동하면 되지 않느냐고. 제자리 걷기도 하고, 건강체조에 벽 잡고 뜀뛰기도 할 수 있고, 실내 자전거도 있는데 꼭 땅 딛고 걸어야하냐고.
남의 아픔을 지금 자기가 당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한 달만 집에 갇혀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8개월이 되었다. 제자리걸음도 벽 잡고 뛰어도 다리에 근육은 전부 빠져나가고 새다리같이 앙상한 다리는 이제 50미터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보험공단에 심사규정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며, 본인부담이 다소 늘어난다 해도 꼭 필요한 사람에겐 정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더 많은 연구와 더불어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무조건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한다는 독선은 민주국가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