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것
임경억(복지관 종사자)
임경억(복지관 종사자)
내가 안내견 ‘풍금이’와 동행한 지 벌써 7년이 넘었다.
녀석의 나이는 9살. 안내견의 나이로는 머지않아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다.
그래서 그런가, 녀석은 요즘 길을 가다 빈 의자만 있으면 나를 그리로 안내한다. 쉬다 가자는 건지, 아니면 쉬었다 가라는 건지….
어떨 땐 시간이 없어 빨리 가야 하는데 녀석은 보이는 빈 의자마다 그 앞에서 멈춘다. 그래도 녀석이 나를 생각해 빈자리를 찾아 줬는데 안 앉을 수도 없고 해서 잠시 앉아 가야겠다 싶어 10초쯤 앉았다 다시 일어서면, 녀석은 또 그 옆 자리로 가서 기웃거린다. 괜찮다고, 됐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자꾸 빈자리만 찾아 나를 안내한다.
내가 의자에 앉아 쉬어야 녀석도 쉴 수 있다는 계산이 아니고서야 이리도 열심히, 찾지 않아도 될 빈 의자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여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싶어 짠한 마음이다.
녀석이 세 살 때(만으로 따지면 한 살 6개월쯤)부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원체 사람을 좋아해서 안내견인지, 애완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촐싹거리는 강아지였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가간다.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까지 들이밀면서 말이다. 몸집은 30kg쯤 되는 성견이지만 하는 짓은 천생 귀여운 강아지이다.
내가 안내견 ‘풍금이’랑 길을 가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그놈 참, 사람보다 낫다”이다. 아마도 신문 지상이나 TV 뉴스를 통해 사람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 거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그 말이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일리도 있어 보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안내견을 분양받은 이후로 동네 사람이건, 직장 동료이건 간에 거리에서 만나면 사람들은 나보다도 먼저 안내견 ‘풍금이’랑 인사를 나눈다. 녀석과 충분히 인사를 다 나눈 뒤 그 다음에야 나에게 인사를 한다. 정말 녀석이 나보다 나은가 보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 사정이 있어 잠시 안내견 학교에 풍금이를 맡겨 둔 적이 있었다. 안내견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흰지팡이를 사용해 길을 다닐 수밖에. 그동안 평탄했던 길이 온통 장애물투성이였다. 길 다니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안내견이 없어 다니기에 참 힘들겠어요”라고 위로의 말을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같은 위로의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안내견이 어디 갔느냐고 묻고 나선 다 하는 소리가 “그래, 안내견도 휴가 갔다 와야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풍금이의 발걸음 속도가 다소 느려졌다. 아마도 나이 탓일 거다.
나는 걸음이 좀 빠른 편이어서 예전 같았으면 풍금이를 빨리 가자고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내 걸음 속도를 풍금이에게 맞춘다. 내가 인내심이 생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지혜’를 깨쳐서일 것이다. 내가 빨리 가야겠다고 같이 가야 할 그 누군가를 재촉한다는 것은 결코 현명치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다 함께 먼 길을 가야 하는 공동체다. 그러려면 내 발걸음에 맞추라고 다그치기보다는 상대의 발걸음에 내가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녀석의 나이는 9살. 안내견의 나이로는 머지않아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다.
그래서 그런가, 녀석은 요즘 길을 가다 빈 의자만 있으면 나를 그리로 안내한다. 쉬다 가자는 건지, 아니면 쉬었다 가라는 건지….
어떨 땐 시간이 없어 빨리 가야 하는데 녀석은 보이는 빈 의자마다 그 앞에서 멈춘다. 그래도 녀석이 나를 생각해 빈자리를 찾아 줬는데 안 앉을 수도 없고 해서 잠시 앉아 가야겠다 싶어 10초쯤 앉았다 다시 일어서면, 녀석은 또 그 옆 자리로 가서 기웃거린다. 괜찮다고, 됐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자꾸 빈자리만 찾아 나를 안내한다.
내가 의자에 앉아 쉬어야 녀석도 쉴 수 있다는 계산이 아니고서야 이리도 열심히, 찾지 않아도 될 빈 의자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여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싶어 짠한 마음이다.
녀석이 세 살 때(만으로 따지면 한 살 6개월쯤)부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원체 사람을 좋아해서 안내견인지, 애완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촐싹거리는 강아지였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가간다.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까지 들이밀면서 말이다. 몸집은 30kg쯤 되는 성견이지만 하는 짓은 천생 귀여운 강아지이다.
내가 안내견 ‘풍금이’랑 길을 가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그놈 참, 사람보다 낫다”이다. 아마도 신문 지상이나 TV 뉴스를 통해 사람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 거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그 말이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일리도 있어 보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안내견을 분양받은 이후로 동네 사람이건, 직장 동료이건 간에 거리에서 만나면 사람들은 나보다도 먼저 안내견 ‘풍금이’랑 인사를 나눈다. 녀석과 충분히 인사를 다 나눈 뒤 그 다음에야 나에게 인사를 한다. 정말 녀석이 나보다 나은가 보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 사정이 있어 잠시 안내견 학교에 풍금이를 맡겨 둔 적이 있었다. 안내견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흰지팡이를 사용해 길을 다닐 수밖에. 그동안 평탄했던 길이 온통 장애물투성이였다. 길 다니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안내견이 없어 다니기에 참 힘들겠어요”라고 위로의 말을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같은 위로의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안내견이 어디 갔느냐고 묻고 나선 다 하는 소리가 “그래, 안내견도 휴가 갔다 와야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풍금이의 발걸음 속도가 다소 느려졌다. 아마도 나이 탓일 거다.
나는 걸음이 좀 빠른 편이어서 예전 같았으면 풍금이를 빨리 가자고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내 걸음 속도를 풍금이에게 맞춘다. 내가 인내심이 생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지혜’를 깨쳐서일 것이다. 내가 빨리 가야겠다고 같이 가야 할 그 누군가를 재촉한다는 것은 결코 현명치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다 함께 먼 길을 가야 하는 공동체다. 그러려면 내 발걸음에 맞추라고 다그치기보다는 상대의 발걸음에 내가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