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가라는 사인
임경억(복지관 종사자)
얼마 전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한 여자중학교를 찾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 앞에 섰다. 미래의 이 나라,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동량지재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 첫머리에 항상 학생들에게 “시각장애인이 되면 어떤 불편함들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계단이 위험해요.”,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없어요.”, “책을 맘대로 볼 수 없어 불편해요.” 등등이다.
이 같은 평범한 대답 가운데 아주 귀여운 답도 있다.
“저같이 예쁜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가장 불편할 거예요.”
장애 체험을 하면서 우리는 주로, 장애인이 되면 무엇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대해서, 그리고 또 그 불편함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안내를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고, 식사를 할 때나 차를 이용할 때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등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들은 그 같은 불편함들을 이제까지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어떤 편의시설, 어떤 제도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애가 얼마나 불편한지 이해함과 동시에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 깊이 함께 생각해 보자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널 경우 시각장애인은 눈을 볼 수 없어 초록불인지 빨간불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항상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을 기다려야 할까? 주위에 아무도 없을 경우에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 소리 나는 신호기가 있으면 시각장애인 혼자서도 충분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
시각장애를 입으면 책을 읽을 수 없을까?
나 역시도 11세 때 실명하고 나서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돼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다.
앞을 볼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시각장애인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시각장애인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수술을 해서 눈을 떴다고? 아니다. 거기에는 시각장애인의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귀로 들어서 읽을 수 있었고 손으로 만져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비장애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또 던지곤 한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를 시각장애인도 쓸 수 있을까?”라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용할 수 없을 거라고 답하고 특수 제작된 컴퓨터가 있을 거라고 추측들 한다.
왜 시각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모니터를 볼 수 없잖아요.”라고 답한다.
그때 나는 묻는다. “모니터를 눈으로밖에는 볼 수 없을까?”
그제야 아이들의 입에서 “시각장애인도 내가 쓰는 똑같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겠네요. 모니터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요.”라는 답이 나온다.
시각장애인도 야구나 탁구, 축구를 한다고 하면 “아니, 안 보이는데 어떻게?”라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온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 ‘장애’라는 것은 ‘불가능’의 사인이 아니라 ‘돌아서 가라’는 사인인 것이다.
십수 년 전 스페인에 있는 한 방송국에서 시각장애 여성 누리아 델 사즈라는 사람이 뉴스 진행자로 발탁이 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3세 때 망막이상으로 시력을 잃은 그녀는 세비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안달루시아 지역 방송국 뉴스 진행자 공채에 합격, 앵커석에 앉게 되었다.
점자로 프린트된 기사를 손으로 읽는 것과 제작진의 수신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지시를 받는다는 점 외에는 다른 동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 여성이 어떻게 앵커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그녀는, 미 주간지 인콰이러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비장애인들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그 방법만이 다를 뿐입니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