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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책상(배학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4-30 오후 3:28:04

조회수 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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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책상(배학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4-30 오후 3:28:04 (조회 : 3058)
책상
 배학진(전 은광학교 교사)
 
  내 이름은 넓은마을 이야기벤치에서는 물론이고 그밖에 어디에서나 오로지 배학진이라는 이름 하나뿐이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니 이름말고도 학교에서 부르는 별명이라는 것이 더 생겼다.
  이상한 것은 이름은 하나뿐인데 별명은 하나가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거치는 동안에도 별명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직장에 들어가서도 별명은 계속 이어지거나 새로 생겼다.
  이제부터 지금까지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했거나 사용한 내 별명을 여기에 모두 소개하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이름에서 온 것이 분명한 학질모기였고, 비쩍 말라서 살은 없고 뼈만 앙상하게 보인다며 붙은 별명이 끔찍하게도 해골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월남 전파병을 전후로 한국에 알려진 베트콩이었는데, 마침 같은 학급에 베트콩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다행히 나는 마음에 들지않는 베트콩 대신에 잽싸게 그럴 듯한 월맹 대통령 호지명으로 내 멋대로 별명을 바꾸어 버렸다.
  시골 고향 친구들은 176cm밖에 되지 않는 나를 동네에서는 그래도 키가 큰 편인지 키다리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가뜩이나 일에 서툰 나를 놀리는 별명인지라 듣다못한 내가 화가 나서 폭력행사를 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 눈이 나빠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와 집안 농사를 돕는 내가 일은 못하면서 맬없이(‘괜히’, ‘이유 없이’라는 뜻의 사투리) 키만 크다고 나를 놀리는 별명이 바로 키다리인지라 화가 난 내가 듣다못해 폭력행사를 한 거다.
  내가 맹학교에 편입학하니 거기서도 별명은 붙었다.
  학질모기는 맹학교에서도 여전했고 흰 고무신을 깨끗하게 닦아 신는다고 영감님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내가 후배들에게 욕을 함부로 한다고 욕쟁이 영감님으로도 불렸으며, 원불교 신자라 땡초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맹학교는 일제시대 경성재생원으로 출발해서 해방이 되자 서울맹아학교가 되었다.
재생원에는 앞을 못 보는 맹생과 말을 못하는 아생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는데 장애영역이 다르다보니 학생들 간에 다툼이 잦았다. 해방 이후에 서울맹아학교로 개명했으나 장애영역이 달라서 일어나는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당국은 맹학교와 농학교로 분리 독립시켰다.
  선배들에 의하면 당시 아생은 맹생을 가리켜 책상이라고 했다는 거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생은 자기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남이 옮겨놓으면 마치 책상처럼 꼼짝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아생이 볼 때 맹생이 책상과 다를 것이 없었던 거다.
  맹학생들이야 보지 못하니 아생들이 책상이라고 하든지 말든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나도 맹학교 시절 바로 옆 농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목이 말라 농학생에게 물을 청한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농학생은 아무 말 없이 막무가내로 나를 손잡아 끌어 수도꼭지를 손에다 쥐게 해서 황당했던 일도 있었다. 그들은 책상을 옮기듯 나를 옮긴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농학생이 볼 때는 나도 하나의 책상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친절한 농학생이 책상을 옮기듯 나를 대했지만 그 때는 그걸 몰랐다.
  그러나 중풍 발작 17년이 된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중복장애 1급이 되었고 별 수 없이 나도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휠체어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바퀴가 달렸을 뿐 의자가 분명하다.
  책상과 의자!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 아닌가?
  자랑은 아니지만 눈에 확연하게 띄는 나를 어설프게 가리기보다는 차라리 당당하게 나는 책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독자 여러분은 나를 일러 책상이라고 불러도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맹학교 시절 농학생도 나를 그렇게 부른 이름이 책상이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나는 여전히 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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