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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악설(김경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29 오전 10:32:13

조회수 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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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악설(김경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29 오전 10:32:13 (조회 : 2781)
 
성악설
 
김경미(경상대학교 사회복지행정과 재학)
 
  여기 부산에는 장애인 콜택시가 운영 중이다. 일반 택시에 바우처 제도를 접목시킨 것으로 콜 후 10분 내외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대기 시간이 짧고 별도의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어서 난 장애인 콜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하루에 2~3회씩 이용하다보니 정말 다양한 부류의 기사님을 만났고 에피소드도 많다. 불쾌하고 황당한 일도 있었고, 기사님의 친절에 감동하기도 했었다.
  기사님 중에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말 친절하게 서비스를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없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서비스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또 어떤 분들은 장애인들은 무조건 지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여기시는 듯 내 말은 무시한 채 집요하게 동승한 비장애인의 말만 듣는다. 어떤 분은 더듬거리는 내 몸짓이 무안할 정도로 정안인처럼 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님과 장애인 복지제도와 비장애인들의 인식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용의 결론은 장애인 복지제도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난 중도 실명한지 4년 밖에 되지 않아 별로 실감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 장애인을 몇 번 본 게 고작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장애인 활동 바우처 제도도 없고 장애인 지원 차량도 턱없이 부족했을 테니 나 같은 중증 장애인은 바깥출입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과거를 더듬어가다 보니 부끄러운 일이 기억났다. 하이힐을 신고 지하철 역사를 걷다가 점자유도블록 때문에 비틀거릴 때마다 “이걸 왜 이리 많이 깔아 놓은 거야?”하며 투덜거렸던 내 모습. 점자유도블록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역사를 따라 곳곳에 설치해야 하는 이유를 정안인이었던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다.
  시각을 잃은 지금은 지하철 역사에서 점자유도블록을 따라 걷다가 단 1미터 정도만 점자유도블록이 끊어져 버려도 방향을 잃고 헤매는 내 모습과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같은 사람인데도 점자유도블록에 대한 절실성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아무리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미루어 짐작할 뿐 100% 공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악설과 성선설이 있다. 예전의 나는 성선설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악설을 믿는다. 내가 장애를 갖게 됨으로서 겪은 불쾌하고 불합리한 일들 때문은 아니다. 물론 생각의 발단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기는 엄마가 잠이 부족하거나 피곤한 것에 아랑곳없이 배가 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축축하면 찡얼거리고 안아달라고 보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기를 이기적이고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은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나 경험과 학습을 통해 옳고 그름을 배우고 이타심과 협동심을 배워가며 성장한다.
  이것을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행동에 비추어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사회적 약자를 돕고 배려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알 뿐이다. 그래서 막상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서 도움주기를 망설이거나 섣부른 친절로 장애인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어떤 장애인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며 욕을 하거나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과연 누가 더 잘못한 것일까? 비장애인들은 경험과 학습의 부족으로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행동했을 뿐이고,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현실에 화가 나는 것이니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렵다. 과거 내가 점자유도블록 때문에 투덜거리는 소리를 어느 시각장애인이 들었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로선 점자유도블록이 역사를 따라 설치되어야하는 필요성을 몰랐기 때문에 내 하이힐이 망가지는 게 더 속상했었다. 만약 내가 시각장애인을 자주 대하여 보행 시 점자유도블록의 필요성에 대해 좀 더 알았더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우리는 소통해야 한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배려하라고 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와 비장애인과 소통함으로써 그들에게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임을 가르쳐줘야 한다.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싫고 무시하는 말과 행동에 똑같이 무시하고 회피하며 주저한다면 우리는 두개의 평행선으로 절대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너도 나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누구나 제대로 학습하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주관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오해로 상처를 받고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화가 나서 다투거나 언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과 과정을 겪으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면 언젠가는 너와 나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힘들고 더디더라도 포기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서로를 알아가고 배워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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