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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갈등(이인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01 오전 11:03:53

조회수 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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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갈등(이인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01 오전 11:03:53 (조회 : 2644)

갈등
이인호(경은학교 교사)

  옛날, 어느 시골에 초가지붕이 예쁜 두 집안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집안은 산기슭에서 뻗어 나온 칡덩굴이 집 뒤편 돌담을 탐스럽게 뒤덮어 초가집의 운치를 더해 주었고, 다른 한 집안의 뒤뜰에는 등나무 여러 그루가 무성하게 자라 초가지붕 가장자리까지 덩굴이 이어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두 집안을 가리켜 칡덩굴 집과 등나무덩굴 집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두 집안 사이에는 작은 도랑이 있었고, 그 도랑에는 소박한 돌다리가 놓여 있었지요. 오직 두 집안사람들의 왕래를 위해 놓여 있는 다리였습니다. 그러나 퍼런 이끼로 뒤덮인 돌다리는 원래의 색채를 잃어버렸고, 듬성듬성 웃자란 잡초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쓸쓸함을 느끼게 만들었지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래요. 두 집안은 여러 해 동안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앙숙이 되어 있었지요. 두 집안사람들은 가끔 마을 어귀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지나쳐 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퉤!”하고 서로의 발치에 침을 뱉다가 멱살을 잡으며 싸움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뜯어 말리고 화해를 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었습니다. 두 집안 사이에는 화해의 조짐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칡덩굴과 등나무덩굴이 무성하게 자란 어느 가을 오후, 등나무덩굴 집안 외동딸이 도랑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옷을 빨고 있던 처녀는 갑자기 흙탕물이 흐르자 깜짝 놀라 빨래를 건져내고 도랑물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눈을 돌렸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만치 위쪽에서 칡덩굴 집안의 장남이 삽과 호미를 씻으며 혀를 날름 빼고 처녀를 조롱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약이 바짝 오른 처녀는 돌멩이를 집어 들어 냅다 총각에게 던졌지요. 돌멩이가 튀긴 물을 고스란히 받은 총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총각도 씻던 삽을 내팽개치고 물가에 놓인 큼지막한 돌멩이를 집어 들어 처녀에게 던졌습니다. 흠뻑 물세례를 받은 처녀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빨래를 내팽개쳤습니다. 그 꼴을 쳐다보며 총각이 박장대소를 합니다. 부아가 치민 처녀가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키만 멀대 같이 크고 멸치 대가리처럼 생긴 놈이 왜 대낮부터 행패야!”
  총각도 지지 않습니다.
  “벼룩 똥자루만 한 계집애가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몇 번의 험상궂은 대화가 오간 뒤 두 사람은 돌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았고, 따지기 위해 서로에게 건너가려다 다리 위에서 떡하니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두 팔을 걷어붙인 처녀가 총각의 멱살을 잡으려고 무작정 덤벼듭니다. 총각도 물러서지 않고 처녀의 어깻죽지를 향해 두 팔을 뻗습니다. 그러다 처녀와 총각의 손이 허공에서 마주칩니다. 번쩍! 갑자기 찌릿한 전기가 처녀 총각의 심장에 전해집니다. 귓가에선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처녀의 볼이 홍당무처럼 발그레해집니다. 총각의 입술도 바짝바짝 타들어 갑니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마주 댄 손을 떼지 못하고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무언가 미세한 떨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양쪽 집안의 호롱불이 꺼지고 짙은 어둠이 깔리면 돌다리 위에 젊은 두 남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등나무덩굴 집 앞마당에서 두 남녀의 혼례가 치러졌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뜬금없이 웬 혼례식이냐고 하시겠지만, 원래 남녀 관계라는 것이 다 그런 겁니다. 혈기왕성한 남녀는 손가락만 스쳐도 전기가 찌릿찌릿 하다가 용광로보다 뜨거운 정열이 온몸을 사로잡게 되지요. 그렇게 두 집안은 포기하다시피 사돈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혼례를 치른 지 열 달 뒤 젊은 부부 사이에 ‘사랑’이란 이름의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무척 귀엽고 애교가 많은 사랑이가 ‘까르르’ 하고 웃으면 양쪽 집안 사람들은 애간장이 다 녹아 버리는 듯했지요. 손녀의 출생과 함께 두 집안의 왕래는 잦아졌고, 돌다리 위의 잡초와 퍼런 이끼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옥신각신하던 두 집안은 이제 완전히 화해를 하게 된 것이지요. ‘사랑’이가 두 집안의 갈등을 말끔히 녹여버린 겁니다. 그렇게 두 집안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갈등은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칡 갈 자에 등나무 ‘등’ 자이지요. 칡덩굴과 등나무덩굴이 얽히고 꼬여 있는 상태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합니다. 시각장애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는 모습이 자주 보이니까요.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확실한 화해책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씀씀이가 필요한 때인 건 분명합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뒤엉키는 시간이 오래 될수록 갈등은 더 커진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 이제 우리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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