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의 양면성
종광희(인천남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한 면에는 그림, 또 다른 한 면에는 숫자.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동전의 앞과 뒤는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이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세상 모든 만물에게 주어진 이름도 또 앞-뒤의 구분도 마찬가지. 아마도 인간이 세상에 존재되면서 그저 편리성을 추구하고자 지칭해 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은 그 누가 정해놓은 기준이란 말인가? 이 또한 사람마다 정해놓은 생각의 기준에 불과하지나 않은 건지! 그리고 모든 옳고 그름에도 이 동전과 같은 양면이 공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에 읽은 무협지 김용의 ‘화산논검’ 제1부 서독 구양봉편에서 필서된 내용을 인용해보기로 하자. 무협지가 무슨 책이냐고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우선 그 편견부터 바꿔주길 바란다. 세상 어떤 책이든 그 안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지혜는 숨어 있는 법이니까.
간악에는 큰 간악과 작은 간악이 있다. 큰 간악을 가진 자만이 큰일을 하고 큰 영웅이 되는 법. 인간이란 좋은 일을 하기는 쉬우나 나쁜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나쁜 일에는 대저 3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그 나쁜 일이 자기와 남에게 모두 좋은 점이 없는 것인데, 이런 나쁜 일을 하는 인간은 따라 배울 바가 못 된다. 이런 인간은 없어지는 편이 이롭다. 그것은 큰 악에 멍에만 입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는 나쁜 일을 한 것이 남에게는 조금도 좋은 점이 없지만 자기한테는 좋은 점이 있는 것인데, 이것도 소인지견(小人之見)에 불과하다.
세 번째 부류는 그들이 해놓은 나쁜 일이 자기에게도 좋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좋은 점이 아주 많은 것이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자기에게는 큰 위업이 되고 또 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 된다면 왜 이런 일을 망설이겠는가.
자! 그럼 이 내용을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란 책을 통해 살펴보자.
삼국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묘사되고 있는데, 과연 이중에서 누가 진정 옳고 그름을 행한 인물인가? 이 책에는 유비를 독보적인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과연 그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간악’ 그중에서도 큰악을 행하는 자만이 큰일을 할 수 있고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했듯이, 삼국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다. 이러한 사건들을 사람들의 옳고 그름에 기준한다면 사람을 해하는 일은 악행 중의 악행이 되며, 이는 그른 것이다. 하지만 이 악행으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대저의 기준을 양면적인 부분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결코 악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비나 조조 그리고 강동의 손권을 따랐던 인물들은 그들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어서 그들을 주군으로 모셨던 것이겠는가? 그들도 역시나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편에 의해서 주군으로 섬기고 따랐을 테다.
지금의 우리 시각장애인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외되고 어느 제도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회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계속하여 옳고 그름을 논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려는 유비적 성향이 엿보이고, 제도권에 속한 리더들은 이들의 주장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그네들과 마찰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조조적 성향의 양면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어떤 인물이든 우리 시각장애인계에서는 덕을 실현하는 선인이길 바라고, 이러한 선을 행함에 있어 악인을 자칭하는 사람이길 바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