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알림공간

제목 아, 그 엿장수 아저씨 (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1-15 오전 11:47:34

조회수 2834

게시물 내용
제목 아, 그 엿장수 아저씨 (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1-15 오전 11:47:34 (조회 : 2834)

아, 그 엿장수 아저씨
이진규(임대업)

  요즘엔 엿이 대학수능시험 철에야 반짝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내 유년기에는 엿이 설탕을 대신하던 당분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엿이란 단순한 군것질감이 아니었으니,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즐겨 먹으면서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당분을 엿을 통하여 섭취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엿장수 아저씨는 전 국민의 당분 보충에 일조를 했고, 나아가서는 폐품 재활용에 기여한 고마운 분이었다. 그 시절 시골 마을을 찾아오던 엿장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이 나이에 다시 그리운 건 아마 그 시절로 되돌아가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엿장수에 대한 나의 기억은 40년이 흘러도 참으로 달고 구수한 추억이다.
  “엿 사시오, 엿! 울릉도 호박엿 사시오!”
  오늘은 이 동네로, 내일은 저 동네로, 보름마다 한 번씩,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때없이 찾아와 우리네 혀끝을 달착지근하게 해주던 엿장수 아저씨. 이 아저씨가 가위 소리를 째깍째깍 울리며 골목길을 들어서면 동네 조무래기들은 침부터 꿀꺽 삼키면서 몸도 마음도 괜스레 바빠지는 거였다.
  “빈 병이나 헌 고무신짝이나 쇳조각이나 다 됩니다. 엿 사시오, 엿!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이런 엿장수 아저씨의 구성진 엿 타령이 온 장터를 휘젓고 들어서면, 동네 아이들은 뭔가에 홀린 듯 제 집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낮은 포복으로 툇마루 밑에도 기어 들어가 보고,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머리에 뒤집어써가며 헛간도 뒤져보고, 그러다가 뭐라도 용케 하나 찾아내면 이 웬 떡이냐 싶어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져 그걸 들고 쪼르르 달려 나가던 그때의 설렘을 어이 잊을까.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듯이 엿을 잘라주는 건 정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빈 병이든 헌 고무신짝이든 눈어림으로 대충대충 값이 매겨졌거니와, 쇳조각일 경우에는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더러는 대저울로 달아서 값을 쳐주기도 했지만, 그 역시 그 크기는 아저씨 마음대로였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흰고무신 검정고무신 따져가며 엿을 받아 챙기려 했겠지만, 그 시절 아이들은 그런 거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어쩌다 애석하게도 자기 집에 폐품이 하나도 없어서 빈손으로 나온 아이가, 코가 석 자나 빠져 애꿎은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엿장수 아저씨는 고객 관리 차원에서랄까 인심을 쓰기도 했지.
  “코 좀 닦아라, 코 좀 닦아. 코 안 닦으면 한 입 안 줘!”
  이래서 아이가 그 싯누런 코를 손등으로 쓰윽 닦고 있노라면 엿장수 아저씨는 눈곱만큼 떼 낸 다음 ‘옛다!’ 소리치며 사탕 반쪽만한 엿을 떼어 주기도 하던 그때.. 그런 날은 이런 말도 자주 듣곤 했다.
  “할멈, 내 고무신 어디 갔어?”
  “아까 엿장수 소리가 쩔겅대던데 혹시 막내 놈이 또 엿 바꿔먹은 거 아니유?”
  그랬다. 철부지 아이들이 댓돌에 벗어놓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멀쩡한 고무신을 갖고 나오면, 엿장수 아저씨는 척 들고 요리조리 훑어본 뒤에 “너 요놈!”하고 호통을 쳐서 되돌려 보내기도 하던, 마음 훈훈한, 그러면서도 맛보기 한 조각 떼주기를 잊지 않던 그 엿장수 아저씨.
  “어서들 와요! 엿치기 한 번 하셔야지, 그냥 가면 혀 끝에 혹 나지.”
  그리고 엿하면 엿치기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손가락 굵기 만한 가락엿을 뚝 분질러 보면 그 단면에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저마다 가락엿을 하나씩 집어 들고 뚝 분질러서 이때, 구멍이 제일 작은 사람이 엿 값을 계산하는 방식이던 엿치기는 주로 청년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여자 머리카락 모으기에 관심이 높았다. 
  그 머리카락이 엿을 사먹는 데는 최고의 값을 쳐주었으니, 댕기머리 누나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빗을 때면, 으레 누나에게 다짐받던 말이 있다.
  “이거 내가 맡았어. 형 주면 안 돼.”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질 때 가락엿 하나 떨어지고, 머리카락 두 올 떨어질 때 가락엿 둘 떨어지고… 그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가락엿이 오버랩 되던 그런 때가 우리에겐 있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추억은 멀수록 아름다운 것. 그 엿장수 아저씨는 지금 어느 골목에서 또 어떤 엿을 소리쳐 외치며, 누구에게 어떤 엿을 팔고, 어떤 형태의 고무신을 받으며 세상을 누비고 있을까?
  그 엿 사먹던 아이들은 또 어떤 모습의 할아버지가 되어 혹시 제 손자들에게 제 고무신을 빼앗기고 맨발로 힘든 고갯길을 넘고 있지는 않는지! 나무들이 잎 떨어진 자국을 꿰매고 있는 이맘때면 나는 자주 옛날의 뒤란을 뒤적이는 버릇이 있다. 아무래도 그 뒤란에는 엿보다 더 달콤한 나의 유년기가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645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전화: (02)440-5200 FAX: (02)440-5219

Copyright 2012 All rights reserved to hsb.or.kr

한시복 이용안내

09:00~18:00(토·일 공휴일 제외)

02-440-5200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