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이 오면
최명삼(우성출판사 대표)
어김없는 엄밀한 시간에 또 떠밀리어 오늘에 와 있습니다. 올해는 갑오년입니다. 오행설에 의한다면 갑오년은 나무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푸른색을 띄고 있다하여 청마의 해라고들 합니다.
정월 초하루가 지나고 또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할 일이 참 많아졌습니다. 정월엔 우선적으로 정원을 손질을 해야 됩니다. 우선 잔디 사이에 나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하여 카소론을 뿌려야 될 것입니다. 매 년 항상 하는 연례행사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뿌리곤 하던 카소론은 토양충도 죽이고 그 못되고 징그러운 진드기도 제거합니다. 더욱이 보기도 흉하고 너무나 징그러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노래기도 없애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있으면 8백여 평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따라 심어진 넝쿨 장미 손질을 해주기 위하여 전문 조경사가 들어와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원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작은 과수원에서도 조경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려면 조경사의 손길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과수원의 명자나무는 토종벌들을 불러들이고 매화나무나 대추나무등 유실수들이 조경사의 전지와 영양분을 배급받기 위해서 전문가의 적당한 거름분배가 요구됩니다.
내가 사는 이곳은 그 유명한 홍난파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노랫말이 이야기 하듯이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조경석 사이사이에는 아기 진달래가 심어져 있으나, 그리 바람직하게 자라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 수 년 동안 잔디와 과수원을 가꾸었으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애석한 마음도 가졌었습니다. 단맛이 풍부한 나무들은 지난해에 많이 제거했으나,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포도나무나 머루나무나 체리(앵두)나무는 끔찍하게 달려드는 멀리서 온 이국매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도래되는 다음 달이 기다려집니다. 밤나무 밭에 심어진 참두릅은 몸에 생기를 돋아주고 여기저기에서 나는 자연산 달래와 냉이도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흔들어 주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품어내는 산나물들의 향기는 봄 속 깊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수고가 따르는 법이며 열심히 가꾸고 보살펴져야 만 될 것입니다. 금년은 울타리 따라 피는 장미가 탐스럽고 유난히 붉고 흰 탐스러운 장미를 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장미를 가꾸는 내 집사람이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곳에 집을 짓고 가꾼 지 어연 십수년이 되었으며, 실명 이후 우여곡절이 참 많았으며 딸만 있는 나로서는 혼기가 찾아오는 과년한 딸들의 혼사문제로 고민하다 내 실명으로 인한 피해가 딸들에게 있을까봐 전전긍긍하던 나머지 추락한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실명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사업을 신분상승용으로 손대어 운영하다가 견디기 어려운 꼴도 당해 깊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헤맨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무리 신분이 추락되었다하여도 인위적으로 신분상승 시키기 위해 애쓰지는 않겠습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면서 부끄러운 장면 장면이 그저 아픔으로 상처되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울타리 안에 장미를 심게 되었으며, 오직 이 안에서만 살고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울타리치고 사회와 격리시켰는지 모릅니다.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후회는 나중에 찾아오는 것 지나고 보니 모든 행위가 부끄러워야만 할 짓만 한 것 같습니다. 혹자는 깊은 산속에 마을과 떨어져 지은 집이니 외롭고 무섭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야기 합니다. 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이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어차피 생자는 필멸이라 오늘도 나는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추수가 끝나 논과 밭 사이에 난 농로를 따라 추운 동절의 바람을 안고 그저 걷고 있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조용히 왔듯이 조용히 걸어서 매일 매일 새 날들을 맞이하게 되나 봅니다. 추운 날은 하늘이 더 위에 맑아서 저녁에는 별들도 유난히 반짝입니다. 그저 매일을 나는 이렇게 한 두 시간씩 아내와 더불어 팔짱을 끼고 걸으니,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너무나 다정한 한 커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걷는 것도 부러움을 주게 되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개집 식당을 살펴보니, 개집 물그릇은 살얼음이 얼어 차단된 공기가 살얼음 속을 아주 맑게 하여서 투명합니다.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 산책으로 입었던 등산복과 거위털 점퍼를 벗고 장날이라니, 시골 장구경이나 하렵니다. 잔디 위 한 구석의 잔설은 녹다 말다 해 그 또한 언 물이건만 날아온 황사 때문에 불투명한 반죽이 되어 곤죽이 된 눈을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