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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릅이야기(김진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15 오후 1:39:35

조회수 2842

게시물 내용
제목 두릅이야기(김진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15 오후 1:39:35 (조회 : 2842)

두릅이야기
김진수(침술업)

  실안개가 감도는 골짜기를 숨차게 오르다보면 발길을 멈추게 하는 두릅나무의 군락을 만날 수 있다. 두릅나무의 영역에 들어서면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태고의 땅에 들어선 것처럼 소소한 느낌마저 들고 불만에 가득 찬 가시를 있는 대로 내밀고 서 있는 흰 뼈대에선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두릅의 시간은 늘 정직하다. 동면을 끝낸 두릅나무의 그 긴 뼈대가 너무나 앙상해 더 이상 생명이 없을 것 같은데 3월의 끝자리에 가만히 귀 대보면 생명을 잇대려는 소망의 소리가 사작사작 들려온다. 
  세월마디가 힘겹게 건너는 4월 중순이 지날 자리에 작은 주먹을 꼭 움켜진 잎망울이 마음 문을 열듯 햇살을 향해 한 잎 한 잎 여린 속살을 드러낸다. 연두 빛 속살을 넋 놓고 바라보면 어느새 두릅의 파란하늘이 낯가림도 없이 내게로 다가와 사색의 늪 속으로 대책 없이 빠져들게 한다.
  작년, 재작년 이맘때도 난 이곳에 와서 두릅을 채취했다. 생장점을 뜯어내는 내 손은 미안한 감마저 들지만 탱글탱글한 두릅순의 독특한 맛에 매료된 나의 미각을 억제하지 못하고 또 여기에 섰다. 손이 잘 닿지 않는 두릅을 따기 위해 나뭇가지를 휘어 잡다보면 나무는 너무도 쉽게 허리가 부러진다. 마법에 걸린 왕자가 야수로 변해 이중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속살이 곱고 여린 성질의 두릅을 바라보며 삿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내면 깊이 자리한 오만과 가식들이 꿈틀댄다. 금방이라도 악취를 풍기며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것들을 꾹꾹 눌러 잘 포장하고 그럴듯하게 치장하여 하루하루를 허방다리 짚듯 살아나가는 인간의 양면성보다 자신을 보호하려 세상을 거부하듯 날카로운 이빨을 진솔하게 드러낸 두릅나무의 가시는 차라리 고상함마저 든다.
  두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이방인을 할퀴고 찌른다. 엄격하게 표현하면 항상 제자리를 올곧게 지키고 살아가는 두릅의 삶에 끼어든 침입자 스스로가 찔리고 긁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을 옹호하는 데만 발달해 있어 자신의 주변에 보호막을 높이치고 늘 타인에게만 탓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하지만 두릅은 척박하고 좁은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감사를 잊지 않듯 햇살을 가득담은 향을 온 산뿐만 아니라 나의 공간까지 가득 채워준다. 
  두릅은 다년생으로서 인삼과 같이 사포닌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봄철에 춘곤증을 잘 이기지 못하는 허약해진 사람들에게 원기를 북돋우어 주고 활력을 찾게 하며 뿌리껍질과 나무껍질은 봄, 가을에 벗겨 잘 말린 후 약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야말로 나무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부분이 한곳도 없다. 
  과연 나는 나름대로 이성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며 사는 인간으로서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이로움이나 기쁨을 돌려주며 살아간 적이 있었을까! 
  오래전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요통을 호소하며 우리 시술원을 내원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수의사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침 시술을 받기위해 찾아오셨다.
  나는 봄철만 돌아오면 고질병처럼 이명이 도지기 시작한다. 예리하게 긁히듯 신경을 건드리는 이 증상은 무엇을 먹어야 사라질까 하고 고민에 빠졌는데 어느 날 그 분이 짚으로 정갈하게 엮은 두릅을 선물해 주셨다. 아버지의 손길처럼 자상한 선물에 콧날이 시큰했다.
  두릅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궁리의 시간을 보냈을까!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몇 백리를 최대한 두릅의 신선함을 유지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새벽이슬을 밟아가며 수없이 많은 가시에 긁히고 찔리며 골짜기를 누볐을 것이다. 채취한 두릅을 하나하나 다듬어 받아먹을 사람의 즐거움까지 함께 엮어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은 보지 않았어도 환하게 읽혀진다. 
  손수 짠 나무상자에 두릅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지로 잘 포장해 배낭에 메고 오신 그 수의사 선생님은 강원도의 우직한 능선처럼 두툼한 손을 내밀고는 “별거 아닙니다.”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어 보이던 그 분이 이십여 년이 지난 긴 세월에도 선명하게 내 생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는 두릅 향이 출렁이는 이 골짜기에서 두릅의 겉모습처럼 더덕더덕 붙어있는 날선 생각과 모난 것들을 잘 헹구어 떨어내고 그동안 잊고 산 고마운 지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봄에 내가 채취한 두릅을 전하고 싶다.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우리 가정에 싱싱한 두릅을 전해주시던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되짚어보며 나도 이 봄에 가슴을 훈훈하게 할 추억 한줄 엮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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