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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 속에서 촛불 켜기(김경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6-01 오후 5:53:54

조회수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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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 속에서 촛불 켜기(김경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6-01 오후 5:53:54 (조회 : 2357)

어둠 속에서 촛불 켜기

김경민(인왕중학교 영어교사)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학교에 넉넉히 도착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나는 이제 나름 초임은 벗어났다는 배짱으로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2년차 교사가 되었다.
  일반학교 교사가 된 이후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힘들지 않냐는 것이다. 나 역시도 임용 전에 수없이 상상해 본 것이 일반 중학교에서 나와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해 보고 상상해 보아도 내가 하기 어려운 것과 상처받을 일 뿐이었다. 만약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나도 아마 진로 고민 단계에서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막상 교사가 되어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내가 장애인 교사이기에 겪는 문제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철부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겪는 문제들 때문이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을 국어 선생님도 하셨고, 수학 선생님도 하고 계셨다. 오히려 나의 신체적인 장애를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일어나는 큰 사건은 없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생들은 시각장애인 교사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새로운 것에 금세 익숙해지고 그것을 잘 흡수하는 유연함을 가졌다. 어떤 학생이 내 쪽을 향하지 않고 뒤에 있는 친구를 보고 있는지,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풀지 않고 옆에 앉은 친구의 책을 들여다보며 문제풀이 발표를 하는지 내가 지적하면 아이들은 깜짝깜짝 놀라며 나에게 약간의 시력이 남아 있다는 자신들만의 결론을 도출하곤 한다. 그런 아이들이지만 웬만큼 지각있는 어른들보다도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또 아이들이다. 작년 이맘 때 있었던 일이다. 2학년 수업에 들어가 조별과제를 주고 돌아다니며 활동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피던 중 한 여학생이 나에게 살짝 물어왔다.
  “선생님이, 앞이 안 보이니까 정말 불편하시겠어요.”
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연민이 가득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몇 초간 망설이다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적응되면 생각만큼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아.”
그러자 그 학생은 웃으며 ‘아아,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구나.’라고 대답했다. 장애인을 한없이 불쌍하게 바라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더 밝고 쿨한 모습을 보여 줄 때 그들 역시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더 빨리 받아들여 준다.
  지난 스승의 날 학생들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중 한 학생은 처음에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비장애인 선생님처럼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의 편지에는 나의 시각장애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테면, 선생님이 장애를 가지고 계시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까지 가신 것이 존경스럽다는 식의 말도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편지에는 자신이 나를 만나기 전과 후에 영어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에게 어떤 점이 고마웠는지만 쓰여 있었다. 그 편지를 보며 나는 이게 아이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안에서 옴싹달싹 못하고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확실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유연했다. 나는 이것이 내가 일반학교에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와 아이들을 좋아해서 이곳에 서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이곳에 있음으로써 아주 작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편견은 서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만약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장애인 친구나 동료를 만난다면 장애인과 한 번도 어울려 보지 못한 이들에 비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그들에 대한 선입견도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도전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학교 말고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장애인 한 명이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터에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장애인이 그 직장에서 다른 한 명의 비장애인에게만 좋은 영향력을 주어도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촛불은 아주 작은 빛이다. 하지만 달빛 한 줄기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촛불이 한 개라도 켜진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어둠 속에서 초를 찾느냐, 그리고 거기에 불을 붙이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장애인들이 함께 과감히 그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능력있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력은 없지만 실력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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