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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두막(강춘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8-01 오전 10:03:02

조회수 2651

게시물 내용
제목 원두막(강춘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8-01 오전 10:03:02 (조회 : 2651)

원두막
강춘석(시조 시인)

  열이 방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다 지친 몸통을 사랑방으로 틀었다. 하나 둘 모여든 노름꾼들 앞에 각이 선 군용담요가 깔린다. 두 판이나 잘못짚어 톡톡히 당한 내 앞에 화투목이 넘어왔다. 잘리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면서 노돈이 커진다. 끗발 나는 김에 튈 요량으로 섞어 치는 화투 장단에 구성진 밀양아리랑이 파고든다. 골목 건너 열이 방에서 나는 아리송한 목소리다.
  “석이 니 쌔기(빨리) 나가 보그라.”
  “형님 이제 막 끗발 오르는데 무슨 소리요?”
  “살림살이 눈이 보배요. 좋은 손 놀리면 뭐합니까? 새 패 나갑니다.”
  “니 쌔기 안 나가나? 처녀가 그것도 둘인데, 서리보다 우박이 떨어질끼다.”
  꼬라박은 꾼들의 눈치가 보여 뭉그적거리다가, 본전을 낙낙하게 챙기고 난 꽁지는 개평을 던져놓고 일어섰다. 삽작(대문 또는 문) 뒤에 숨었던 창님이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세워 붙이며 턱짓을 한다. 까치발로 안 골목을 빠져 나오자 옆구리를 쿡 찌른다.
  “열이가 포도막에 가잔다.”
  “열이 오빠 군대 갔으니 어머니가 포도막을 지키시잖아?”
  “아이다, 하두 꼴짝이라 지키는 사람 없데이.”
  다리껄로 나서는데 자전거 불빛 하나가 다가온다.
  “공장간 아아들이 오는갑다. 그런데 우째 혼자 뿌이고.”
  “어어라, 너그들 오밤중에 서울학생 꼬시서 어데가노?”
  이죽거리던 용구가 자전거 페달을 급하게 밟아 사라진다.
  밤공기를 가르는 가지가지 풀벌레들의 세레나데에 소쩍새가 생뚱맞게 끼어든다. 허겁지겁 기스락길을 오르내리느라 맥 풀린 몸을 섶자리에 내던졌다. 담배 한 개비를 절반이나 태웠을까? 용구가 헐떡거리며 다가온다.
  “모상골로 가는 줄 알았구마. 두리두리 짝을 마차야 안 되것나.”
  “잘 왔네. 어제 밤에는 누구네 수박을 서리했던가?”
  “무임이네 수박 이구마. 할배가 지킨다 캐도 있으나 마난기라. 그 할배 귀가 먹었잖아. 사다리를 떼어놓고 골라가며 따왔다 아이가.”
  “다 잘 익었더라니. 할아버지를 밤새 원두막에 가둔게야? 애라이, 똥물에 튀길 놈들”
  열이가 들어 올리는 포도 소쿠리를 받느라고 엎드린 창님이의 엉덩이를 힐끗 본 용구가,
 “아요 바라. 열이 궁디는 뽀얗던데, 창님이 니는 수박 한통 다 먹고도 오줌 안 매렵더나?”
  “문디들 달이 그리 밝은데 뒷동산 만데이(산마루)로 오라카는 너그들의 시커먼 속  모를 줄 알았나? 내사 마, 일부러 홑치매로 가려서 잘금잘금 지렸다, 와?”
  어느새 포도 소쿠리가 헐빈하고 소주 두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용구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자리를 뜬다. 눈총 맞아 죽는 것보다 늑대한테 물려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던 창님이의 간드러진 콧노래가 산자락을 감고 돌았다.
  원두막 들창 틈으로 새어든 달빛이 흔들린다. 등덜미에 짓눌린 포도알이 툭툭 터진다. 내 팔을 베고 누운 열이의 눈시울에 물기가 어린다.
  “석이 니 언지 가노?”
  “내일이 개강인데 하루나 이틀 빠져도 되고….”
  핏기 가신 열이의 입술이 바람 든 문풍지처럼 바르르 떤다.
  뒷동산을 타넘은 종소리에 놀란 새벽 안개가 움찔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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