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과 선택
오양미(안마수련원생)
금(金) 중에 가장 비싼 금은?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황금, 백금 등등일까?
정답은 지금. 지금 주어진 현재인 것이다. 지나간 난센스 퀴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 말은 내게 매우 큰 위로가 되었다.
시각장애인 생활 3년차인 나는 RP(망막색소변성증) 환자로서 진단받은 지는 15여 년이 넘는다. 진행성 질병으로 물론 처음 진단받았을 때 실명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으나 당시 일반 안경을 쓰고 있던 나는 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단지, 당시 안경 도수를 올려도 교정시력이 나오지 않아 여러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았으나 특별한 병명이 없었다. 자각증상으로는 햇빛이 많은 날의 심한 눈부심 현상과 지금에서야 알게 된 병명인 비문증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안과에서조차 알지 못했던 병명은 서울대 이재흥 선생에게 가서야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피하고 싶었다. 나의 병과 진행을…. 때문에 진단을 받고서도 무리하게 일본 유학을 결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당시의 상황을 피해 도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살아왔다.
하지만 다가온 현실은 거부와 도피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현실 도피 중의 나에게도 장애라는 것은 무관심과 꺼려함의 대상이었다. 현실 무게에 너무 지쳐 여유와 포용이 불가능하다고 자위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현실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도망가던 나에게 남은 것이 가족이었다. 그리고 평생 불효를 하던 나는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할 시간의 의무가 남아 있었다.
대개 나를 비롯한 중도시각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한 진단을 받았을 때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충격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거부하는 부인, 점차 나빠지거나 안보이게 되고 나서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진행한다. 결국 왜 나에게만이라고 하는 분노와 회의의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사실 많은 중도시각장애인들은 이 시점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매우 길다. 대개 복지관으로 재활 훈련을 받으러 나오기까지는 거의 4~6년 사이가 평균이라고 한다. 복지관으로 재활훈련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수용하게 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선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선택보다는 주어지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게 되고 결국 타협의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장애는 죽음과도 같이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일 것이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여 그러한 처지에 이르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다시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도 장애와 마찬가지로 선택이 아니기에 또다시 머물러 나태함 속에 숨어든다. 중도 장애는 그러한 웅덩이에 빠지기 쉽다. 결국 극복은 자신의 몫으로 스스로가 삶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지금의 자리에서 직면하려고 하는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긍정과 지금이라고 하는 생각을 끌고 시작했던 것이 점자였고, 지금은 안마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아와 보니 장애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 생의 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깨닫고 해야 하거나 지내야 할 시간, 즉 지금이라는 시간을 겪어내야 할 무게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긍정으로 받아들인 지금의 시간은 나에게 과거의 시간보다는 훨씬 가볍고 쉽게 지내게 한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존재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한정되어 있지만 주어진 삶의 시간을 긍정의 힘으로 하나하나씩 지금을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