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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을 다녀와서(정지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1-15 오전 10:12:25

조회수 2677

게시물 내용
제목 일본을 다녀와서(정지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1-15 오전 10:12:25 (조회 : 2677)

일본을 다녀와서
정지현(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교정사)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은 일찍 시작한 하루, 일본으로 가기 위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김포국제공항으로 갔다. 서로 삶에 바빠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과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이번 여행은 내 소중한 친구 승리와 혜영이 그리고 혜영이 어머님과 함께했다. 공항에서 여권과 티켓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우리들의 3박 4일 일본 여행이 시작되었다.
  2시간 남짓의 비행으로 도착한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우리들의 가이드 ‘아라이’ 상과 만나게 되었다. 사모님과 함께 이번 여행에 도움을 주고자 나서주신 고마운 분들이지만 일본어를 잘 못하는 까닭에 조금 서먹하고 어색했다. 다행히 곧 최 선생님이 오셔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로 이동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짐을 풀고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오코노미야키’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몇 대에 이어 내려오며 정성껏 만드는 오코노미야키는 우리나라의 것과는 생김새와 맛 모두 달랐다. 철판에서 익어가는 소리와 짭짜름한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철을 이용하여 도착한 곳은 ‘신주쿠 점자도서관’. 현재 점자 악보 교정을 하고 있는 나의 직업병 때문에 일행이 조금 지루했을 시간이기도 했다. 교본을 시작으로 다양한 악기들의 작품집을 보았는데, 대부분의 점자책 제작을 자원봉사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이 촉각 도서들도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자료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이 부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한정된 시간 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상품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진열된 돈키호테 마트에 갔다. 일본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는 긴자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사진도 찍었고, 밤거리를 예쁘게 밝혀주는 도쿄타워도 방문했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은 이틀 동안 아라이 상과 더불어 통역과 가이드를 도와주실 도창화 선생님이 함께했다. 우리는 호텔을 나서서 오모테산도의 다이보라는 카페로 향했다. 1Q84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글을 쓸 때 자주 왔었다는 이 카페는 30년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마음과 정성을 담아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작은 다락방 같은 곳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하라주쿠. 다양한 구경거리들이 있는 이곳에서 나는 아라이 상 사모님의 추천을 받아 앙증맞은 리본이 포인트인 선글라스를 샀다. 이 선글라스를 골라주시며 얼마나 밝게 웃으시던지… 지금도 그 사모님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점심 식사 후에는 에비스 맥주 박물관에 갔다. 직접 방문해서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 이곳의 방침 때문에 아라이 상 사모님이 먼저 가셔서 예약을 하고 오신 다음 안내해 주셨다. 이제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우리들을 위해 수고해주셨던 사모님의 그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맥주 박물관 투어를 하며 직접 시음도 해보고 기념품도 보았다. 커다란 맥주병을 끌어안고 사진도 찍으며 맥주 박물관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은 커피 용품으로 유명한 갓파바시 거리의 유니언으로 갔다. 커피 잔은 물론 스푼, 드립기 등 작은 가게에 정말 많은 용품들이 가득했다. 국내에는 잘 수입되지 않는 원두인 마타하리를 보고 혜영이와 승리가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즐거워졌다. 이곳을 나와 들른 곳은 아사쿠사인데 축제 기간이 겹쳐 사람이 매우 많아서 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며 바나나에 초콜릿 옷을 입혀 파는 간식도 먹고, 대나무 막대를 뽑아 점을 치는 것도 해봤다. 연기를 맞으면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길도 경험하면서 오후 일정을 보냈다.
  저녁에는 저시력협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장애인 종합회관으로 갔다. 우리들이 방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터지더니 모두들 환영의 말을 전해 왔다. 여러 지역에서 우리들을 보기 위하여 모였다고 했다. 이 분들은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눠주시며 반가운 마음을 전하셨다. 여러 보조 기기들을 보고 안과 질환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면서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그저 아쉽기만 했다. 우리를 배웅해주기 위해 사이토 타바사 상과 저시력협회 몇 분이 나오셨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고생하셨던 아라이 상은 다른 약속이 있어 호텔에서 헤어져야 했다. “마지막 배웅까지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시는 모습에서 그분의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 본인도 시각장애인으로 넉넉지만은 않을텐데도 남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한국에 오실 날을 기대하며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는 참 많은 용기와 준비가 필요하다. 나 역시 친구들의 용기와 준비가 없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해외여행이었다. 이렇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람의 인연은 참 소중한 것이라 믿는다. 비록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그분들이 보여준 따스한 마음은 오래도록 소중한 추억이 되어 내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이제 여행을 다녀오기 전보다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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