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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내의 마지막 가을 나들이(김창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2-03 오전 10:13:41

조회수 2623

게시물 내용
제목 아내의 마지막 가을 나들이(김창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2-03 오전 10:13:41 (조회 : 2623)

아내의 마지막 가을 나들이
김창민

  해마다 이때쯤이면 죽음을 앞둔 아내의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과 음성이 떠오릅니다.
  “미안해요.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않기로 했지만 정말 미안해요. 먼저 떠나는 것도 미안하고, 어린 딸을 맡기고 가는 것도 미안하고, 오랜 세월 힘들게 한 것도 미안해요.”
  유난히 계절을 타는 아내는 늦가을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가을 여자로 칭하는 아내는 음력 9월 20일에 태어났습니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은 나 몰라라 하고, 푸른 바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은 외면한 채, 오직 가을 그것도 늦은 가을을 고집합니다.
  가을은 갈대가 있어 가을이라지만 싱싱한 갈대밭은 저 멀리하고, 늘어진 갈대숲, 낙엽이 흩어지는 오솔길, 시들어 고개 숙인 코스모스길, 추수가 끝난 한적한 시골길을 즐겨 걷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가을만 사모합니다.
  왜냐고 물으면,
  “사람도 죽고 꽃도 시들어 떨어지는데, 그때마다 울긴 싫어요.”
  아내의 말인즉,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도 계절마다 피었다가 지는 꽃들도 자기를 슬프게 하니까 시들어 뒹구는 나뭇잎, 늘어진 갈대, 고개 숙인 코스모스로 한번만 울 거라는 말입니다.
  아내가 또 쓰러졌습니다. 세 번의 큰 수술을 이겨낸 아내가 네 번째 쓰러졌습니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남편이었습니다.
  아내는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도, 야위어가는 아내에게 겉치레로 괜찮냐고 묻기만 하고…. 그때마다 아내는 좀 피곤할 뿐이라 대답했습니다.
  늦은 가을 아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자기가 평생 누워 있을 잠자리 옆에 내 자리도 마련해 두었고, 저승길에 입고 갈 옷도 준비해둔 다음 그는 쓰러졌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간암 말기로 앞으로 한두 달 넘기지 못할 거라고….
  찬바람이 떨어진 나뭇잎을 흩어 놓는 날, 아내는 자기가 누워 있을 잠자리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내는 행여 재혼을 하더라도 죽어서는 자기 옆에 와 달라며 쓸쓸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가을 나들이였습니다.
  25년 전 온 세상이 성탄의 축제로 기뻐하는 12월 24일 새벽 2시. 아내는 차마 두고 갈 수 없다는 어린 딸과 내 손을 움켜잡은 채, 천국의 문안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차디차고 앙상한 육신에 눈물을 가득 남긴 채로…
  아내가 묻히던 날, 첫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상객의 어깨 위에 머리 위에 두 손을 꼭 잡고 소리 없이 흐느끼는 어린 딸과 나의 손등 위에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 위에…
  낙엽이 흰 눈이 되어 마흔 다섯으로 생을 마친 아내의 주검 위에 소복소복 쌓여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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