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이 되지 않는 활동지원제도
배학진(전 은광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제도가 시행된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그 결과, 숱한 장애인들이 생활하는데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풍요 속에 빈곤’이랄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일례를 들어본다. 모 여성은 전맹이며 올해 현재 68세이다. 그녀는 건강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제 활동보조 도우미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무심코 활동도우미를 신청했더니 뜻밖에도 거부당했다. 거부 이유인즉, 활동지원 신규 신청은 65세 미만이어서 나이 제한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과 활동 도우미와는 상관관계가 어떻기에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젊어서 필요하지도 않던 활동도우미가 필요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다.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현재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확대 적용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여기서 확대라는 것은 도우미 시간을 늘려준다는 말이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이는 확대가 아니라 축소일 텐데, 확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65세 미만의 규정은 그대로 두고 기존의 대상자에게 서비스 질을 확대한다는 설명이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또 장애인 복지와도 거리가 멀다. 누구의 생각인지 몰라도 이건 장애인을 우롱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기회평등이란 속 좁은 생각으로 안마업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라며 뭇 시각장애인 마음을 울린 적이 있었다. 그것이 ‘공정하고 평등한 정의사회구현’이란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바로 지난 정권에서 ‘윤락 추방’과 함께 시각장애인 사회의 경제를 파멸로 이끌며 벌어진 어처구니없었던 일이다.
장애인이 무슨 이유로든지 활동도우미를 이용할 수 없다면 복지국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까. 차제에 활동지원제도에 맹점은 없을까 따져봐야 하겠다.
우리에게는 선택적 활동지원제도가 아니라 보편적 활동지원제도가 필요하다. 더욱 욕심을 부린다면 보편적 복지를 넘어 맞춤식 활동지원제도가 되어야만 장애인도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맞춤식 활동지원제도는 어떤 것인지 호주의 실례를 하나 알아보자. 호주는 한국과 달리 가족도 도우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과 비교할 때 가족이 도우미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도우미의 질과 양 모두 한국과는 천양지차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것은 장애인 당사자이거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겠다.
가족이 도우미를 하는 경우 장애인 가정의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이야말로 복지와 경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매우 바람직한 예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대통령과 함께 시작하는 새 정부에서는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같이 나이와 상관없고, 재산에 관계없이 제공되는 맞춤식 활동지원제도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