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박향숙
사뿐 거실 유리창을 통과한 싱싱한 햇살이 거실 벽과 조우하자 벽에 붙인 돌이 하얗게 웃고, 박힌 펄은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한다.
이토록 밝고 환해지다니, 역시 집 수리를 하길 잘 했다며 돌아보다 천장에 시선이 멈춘 순간, 개성을 잃은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퍼즐처럼 조각을 맞추어 해바라기꽃 모양을 이뤄낸 장인의 솜씨는 보는 이마다 입을 벌리게 했는데 하얀 도배지로 교체 되었다. 나는 그 특징 없는 천장을 올려다 볼 때마다 그 연갈색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것이 반듯이 좋은 것만은 아니 듯이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고, 낡았다 하더라도 익숙했던 친화력이 새 것의 환희를 누를 때도 있는 것이다. 인간사가 그렇고, 물건 또한 그렇다.
새 옷을 사면 그 기쁨이 열흘 가고, 자동차를 사면 그 기쁨이 한 달 가며, 집을 리모델링하면 그 기쁨이 1년 간다고 하던가!
아무튼 우리는 지난 가을 두 달여에 걸쳐서 집 내부에 옷을 갈아 입혔다. 근 30여년간 클래식 하게 입혔던 나무 옷을 벗겨내고, 요즘 추세를 따라 벽지와 돌과 타일로 화사하게 탈바꿈 시켰다.
집수리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그 천장이다. 조각의 거창함만큼 무게가 나가다보니 세월이 흐르자 가운데가 쳐지기 시작 급기야 위험 수위에 이르러 다시 잘 고쳐 쓰려고 했는데 딸아이가 제발 좀 우중충한 나무를 떼내고 현대식으로 산뜻하게 고치자고 떼를 썼다.
나는 나무는 시간이 갈수록 길이 들고 윤이 나며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는 것이니 그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를 들이지 말자고 일렀으나,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러 데려오려 해도 집이 너무 구식이라 꺼려진다고 하는 바람에 물러서고 말았다.
처음에는 거실만 바꾸려 했으나, 거실을 바꾸고 나면 주방이 추레하고, 주방을 고치고 나면 방들이 죽어 보여 결국 내부 전체를 공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구들이 문제였다. 제일 떠나보내기 서운했던 것은 함께 시집 온 사군자가 수려한 장롱이었다. 내 눈물과 웃음을 지켜보며 30여 년 간 살다보니 그 곱던 모습은 자취를 잃어가고 여기저기 훈장처럼 생채기를 달고 삐걱삐걱 관절 앓는 소리를 내어 나처럼 고쳐가며 살아왔는데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 새로 만난 화조장에 정을 부쳐가는 중이다.
새해 벽두, 올 한 해 만남과 이별의 인연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