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종광희(인천남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누군가 말했다. 선(善)을 행함에 있어서 망설이거나 후회를 남기지 말라고….
어쩌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느 종교 경전에서도 그렇거니와 그 윤리적 지침서나 이론에서도 ‘선’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선’은 무조건 베풀면 좋다. 나쁜 사람, 나쁜 일, 나쁜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니까!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이 ‘선’을 행함에 있어서도 너무 계산적인 건 아닐까? 내가 이만큼 베풀었는데, 받은 상대는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선’을 행한다고 그 누가 알아줄 것인가? 요즘 같은 세상에는 ‘선’을 행하려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당하는 험하디험한 사회가 아니던가! 세상이, 사회가 이러할진데, 과연 ‘선’이 우리 사이에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저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난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이 ‘선’을 받기만 했습니다. 그 예로 2005년 저는 장기이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 형제도 없습니다. 그런 저를 돕기 위해 ‘당나귀’라는 애칭을 지니신 분의 다리품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을 받았습니다. 13시간에 걸친 대수술 후 저는 제2, 3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거듭난 삶인데, 그냥 마구 허비할 수만은 없다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사람을 보면 오지랖이 발동하게 된 이유가….
사람들은 말합니다. ‘쥐뿔도 없으면서 감히 누굴 돕는다고 설치는 거야.’ ‘너나 잘하셔.’ ‘자기 몸 하나 간수도 못하면서 뭐? 누굴 돕자고…’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얘기해주는 사람들의 말이 옳은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렇게 살면 지금보다는 나아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성인 것 같습니다.
오래전 ‘크라잉 게임’이란 영화를 비디오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수영을 못해 개구리한테 부탁합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몰라 거절하죠. 그러나 전갈은 말합니다. 내가 널 찌르면 나도 죽을 텐데 내가 왜 널 찌르겠냐고….
그래서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물살이 거세졌습니다. 그러니까 전갈이 겁이 나서 개구리를 찔러버립니다.
개구리는 죽어가면서 전갈에게 물었죠. 같이 죽을 줄 알면서도 왜 찔렀냐고… 전갈이 슬피 대답합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천성이야’
다른 장면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 얘기만 기억나는 건 왜일까요? 전갈 그 자식의 미련하고 우스운 그 천성이란 게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저도 그 전갈과 같이 내가 이용당할지언정, 남을 이용하지 못하는 바보, 내가 굶을지언정 남은 배부르게 하고픈 어리석은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분명 거저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남겨져 살아가면서 저는 그들에게서 받은 빚을 갚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누구가 저를 위해 ‘선’을 베풀어 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힘겨운 사람, 저보다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제게 베풀어준 그 선인(善人)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빚을 갚을 뿐입니다. 그 무엇도 바라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들 색안경을 쓰고 저를 바라볼까요?
베풂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베풂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색안경들은 이제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선’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처음이 좀 어색해서 그렇지 한번 행하고 나면 지금의 여러분도 그 참맛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은 이 세상이 ‘선’이 많아 이만큼 유지 되는 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