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기다리며
김민지(장신대 교회음악 전공)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목표를 좇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을 궁금해 하게 된 계기는 ‘코리아 갓 탤런트’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내가 노래의 길로 들어선 8년여 만에 많은 분들의 격려와 성원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요즘은 유난히 특송 요청이 많다. 한없이 작고 부족한 나를 사람들은 찾아준다. 가끔은 내가 마치 무엇인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처음 노래를 하던 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1991년 10월 코스모스가 만발한 가을에 태어났다. 21년 간 시각장애로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마도 노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간호사나 멋진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노래는 편하고 쉬운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고 인정은 받았지만, 항상 선생님들이 정해주는 곡을 불렀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곳에서 노래를 했다. 그래서 노래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가 노래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던 때는 아마도 고3때가 아닐까 싶다. 학생으로서의 압박감, 수능에 대한 고민들로 다른 친구들이 대학에 관한 구체적인 상담을 할 때, 나는 오히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했는가?’를 고민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내 생각에 나에게 주어진 3번의 기회 중 첫 번째는 고3때 인 것 같다.
고3의 어느 날, 이날도 어김없이 나는 선생님의 강요로 교회로 향했다.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한곡 부르고 말아야지’하는 생각으로 갔다. 그러나 나의 노래를 듣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내가 오늘날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계기도 그날 비롯된 것이었다. “민지 씨 덕분에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어”라는 장로님의 말을 듣는 순간 ‘아, 나에게도 이런 달란트가 있구나, 그래 내 목소리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아실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평생 어떠한 노래를 부르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기도했다.
대학에 관한 고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내 인생의 목표가 섰으니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음악실에서 살다시피 노래 연습에 매진했다. 음악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강요가 아닌 내 의지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의 함성소리, 무대 위에서의 내가 즐거워졌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CCM가수가 되고 싶어졌다.
몇 달 후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노래 하나로, 나의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대학을 입학할 때 장애인 전형이 아닌 일반인 전형으로 경쟁해 붙었다는 이유로 나는 가수 강원래 아저씨가 진행하는 ‘사랑의 가족’에 출연하게 되었다.
강원래 아저씨를 만나면서 나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 기타를 배우는 것과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가게 된 프로그램이 ‘코리아 갓 탤런트’였다.
난 이 기회도 내 인생에서 지금은 두 번째 기회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기회는 단 3번인데 벌써 두 번째면 서운하니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만든다.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 동정받을 일도 아니고, 나와 같은 장애인들도 행복을 좇는다.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이지 결코 불쌍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노래를 하면서 배웠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꿈과 희망은 이뤄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