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노래하며
최명삼(출판 편집인)
농로를 따라 걷다보니 논에 심어진 벼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황금빛 물결 같습니다. 엊그제 산책길은 분명히 푸른 빛깔 낟알이 달려있는 벼들이었는데...
잠시 의자를 펴고 앉아 눈을 감으며 자신도 모르게 곰곰이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최절로 시인의 시구가 불현 듯 떠올라서입니다. 그의 시구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의 일초 이전일 수도 있다’고 했던가요?
다시 걷다보니 홍영후의 묘지가 2~3m 거리 앞에 보이는군요. 참으로 유명한 분인데... 홍영후 씨라고 하면 아마도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르는 분이 없으실 것 같습니다.
그의 호는 난파입니다. 그래서 노래집에서는 홍난파로 나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여론몰매를 맞은 이후 친일파로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일제하에서는 친일파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묘역이 너무 허술 하군요. 이 소리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닙니다. 내 집을 찾는 이들에게 역사적 사적을 알리곤 하는 코스에 끼워 놓다보니 지인들이 하는 소리였습니다. 친일파 운운하더니 생가 옆에 상당한 액수의 예산으로 계획되었던 야외 음악당과 생가 복원이 중단된 채 준비 되었던 터전만 덩그렁 내동댕이쳐 있습니다. 나도 이 세상에 저렇듯이 내버려진 것은 아닐까요?
이 산길은 나를 이끄는 무엇인가가 있어 가끔이나마 걷게 만드는 산책로입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산자락을 업고 지어진 5성급 호텔이 있는데, 그 호텔의 이름이 ‘롤링 힐’이라고 합니다. 바다 위에 지어진 수상 호텔도 아닌데 언덕이라 멀리서 보면 흔들리는 듯한 호텔 모양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산 동네에 별 다섯 개의 호텔이 세워졌다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닐까요? 이 호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시각장애인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 주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골프장만 빼고 웬만한 레저 시설은 다 즐길 수 있는 호텔이라는 군요.
홍난파가 살던 시절에는 참 좋았던 마을 이었던가 봅니다. 그가 살던 곳은 봄이면 꽃 피는 동산이었으며,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온 산과 들을 물들였나 봅니다. 바다 물길이 마음 깊숙이 드나들던 곳, 파도가 몰려왔다가 물길이 되돌아가면 나타난 갯벌에는 낙지와 온갖 게들 그리고 바지락을 비롯한 조개들과 더불어 들과 산에는 이름 모를 꽃들까지도 바람결에 춤추고 있지 않았을까요? 온갖 생명체들과 꽃피우는 나무들이 그로 하여금 자연을 노래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 자연을 노래하다 보니 곡을 붙이면 참으로 좋은 노래가 되었고 그가 노래한 시에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게 되지 않았을까요?
시인은 아름다운 고향을 그려나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태어난 시인은 고향이 키워 낸 예술가 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다시 보고 싶은 세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