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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득 그리운 오빠 생각(배정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15 오후 4:45:58

조회수 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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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득 그리운 오빠 생각(배정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15 오후 4:45:58 (조회 : 3635)

문득 그리운 오빠 생각

배정숙(안마사)

  우리 세대가 그렇듯 올망졸망 대가족이었던 나는 줄줄이 아홉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이들을 줄줄이 낳고 그중에 두셋은 병으로 떠나보내는 일이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떠나보낸 형제가 있는데 모두 오빠들이다. 둘째 오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홍역으로 세상을 졌고, 넷째 오빠는 내가 다섯 살이던 어느 추운 겨울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 오빠는 기억에 없지만, 내게 정을 많이 주던 넷째 오빠가 떠나버린 충격은 그 해 겨울이 가고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상꼬맹이가 무얼 알았으랴! 죽음이란 것이 그렇게 야박한 것인줄 미처 몰랐던 어린 나는 이 방 저 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울고 소란한데, 밥이 가득 든 그릇을 머리에 이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밥 사세요~! 밥!" 하고 철없이 외치고 다니느라 분주했다.
  그 날은 그렇게 가고 몇날 며칠을 눈이   빠져라 기다려도 다정한 넷째 오빠는 도무지 나타나질 않았다. 그제서야 죽음이란 게 뭔지 살을 에일듯한 슬픔이 뭔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뭔지 깨달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다섯살짜리가 뭘 얼마나 깨달았으랴 싶겠지만, 삶의 깨달음은 이렇듯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이다.
  너무 어릴 적에 경험한 첫 상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유독 살갑던 오빠 생각은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많이 나는지 오빠 생각이 날 적마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곤 했었는데, 지금도 이 기억만큼은 가슴이 저릿하고 무척 아프다.
  셋째오빠는 형제 중에 유난히 머리가 좋았다. 어릴 때부터 흔한 말로 천재성이 엿보였는데, 전교 1 ~2등은 늘 셋째오빠 차지여서 장학금은 늘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 시절 그렇듯 어려운 살림에 상고에 들어갔는데 졸업 후 바로 취직한 은행에서도 역시 두각을 나타냈다.
  업무에 도가 터서 하루 종일 해도 힘든 양을 오빠는 두세시간에 몽땅 처리하곤 했던 것이다. 머리가 유달리 뛰어난 사람은 격정적인 성격이 강해 모든 게 시들해질 때가 쉽게 찾아오는 법이다.
  오빠는 이때를 무난히 넘기지 못하고 노름꾼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월급은 노름판에 투자하기 위해 앞당겨 쓴 빚으로 날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노름빚 압박이 오자 은행직 10년 생활을 뒤로 하고 퇴직금으로 빚 정리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오빠는 새로운 일을 곧 찾았고 가방 만드는 회사 부장직, 한전 검침원 등을 거치며 부지런히 살았지만, 고질병이 있었으니 바로 혼자 끊기 힘들고, 같이 끊기도 힘들고,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심각한 병 알코올 중독이었다.
  하루에 소주 3병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오빠! 술에 취해 있던 오빠가 걱정스러워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요? 건강도 생각하셔야죠!”라고 하면, “나는 세상에서 술이 제일 좋다. 밥 먹지 말라는 말은 해도 술 마시지 말란 말은 하지 말거라~!”하며 역정을 내셨다.
  가족들도 못 말리는 고질병을! 짧게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산다던 희망사항을! 건강을 해칠걸 알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게 크나큰 잘못이었다. 늘 술을 친구삼아 살던 오빠가 3년 전 어느 날부터 몸 이곳저곳이 자꾸 쑤시고 아프다고 하더니 급기야 뇌출혈로 쓰러졌고, 실려 간 병원에서 척수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건강은 뒷전에 두고 해로운 일을 끊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신은 건강해서 괜찮을거라는 착각으로 안위를 하곤 하는 데 온 몸이 바수어지고 망가지도록 자신을 헤쳤던 지난 일이 미운만큼 믿을 수 없이 갑자기 목숨을 앗아가려는 병이 원망스러운 만큼 정신은 더 드세어지기만 했다.
  이제 죽고 나면 육체는 빈손으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고통받을 오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 세례 받기를 조심스레 권했더니 단칼에 뿌리치며 자기는 오직 자신만을 믿는다고 소리쳤고, 그날부터 나를 가까이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뿐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오빠가 그로부터 이십여 일 후 마음이 싹 변해서 나를 찾는 것이었다.
  “정숙아, 오빠가 세례 받을 수 있게 해 주련?”
  오빠가 죽기 전 간절한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만큼은 아픔을 뒤로하고 기뻐할 수 있었다. 한없이 나약해진 순간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오빠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았던 것이다.
  오빠가 떠난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올 가을에는 딸이 듬직한 자기 짝지와 결혼식을 올렸고, 내년에는 아들도 어여쁜 아가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아빠로서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을텐데, 지금쯤엔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들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계시겠지?
  알코올 중독과 흡연은 건강을 해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고, 우울증은 좀 느리게 느껴져 방심하게 하는 속도를 알 수 없는 병이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니 갱년기 우울증이 혹여라도 길어지면 꼭 부끄러워말고 병원에 가보고, 마음을 가볍고 밝게 먹도록 스스로 조절하자. 그리고 소홀했던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말을 맞아 안부전화 한통씩 하여 소식을 전하며 소소한 마음이라도 주고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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