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9백 냥 정신은 9천 냥
이기호(인천혜광학교 교사)
아침엔 영하 6도가 넘었고 내일은 영하 11도가 넘는 강추위가 온다는데, 은근히 걱정이다. 추위를 견뎌야하는 것이 꽤나 싫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하는 학교생활이 몇 해 남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많은 일들이 나의 삶 속에 스쳐 지나갔고, 그 흔적의 요철들만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혹은 아쉬움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맹학교 학생 시절엔 안마와 침술을 열심히 배워서 훌륭한 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침술원을 하던 내가 1990년 뒤늦게 맹학교 이료교사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안마부터 침술까지 이료 교과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학생 때 내가 결심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 평가 기준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시각장애인인 나의 인생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떤 삶이었다고 평가해 줄까?
갑자기 눈이 멀면 누구든 한 번쯤 죽어버리자고 생각해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갓 실명한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처지가 인생의 맨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고 생각하고 좌절과 절망의 늪 속에서 헤맨다.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포기하려고 했었다고 그렇게들 말한다. 그런 좌절과 절망을 딛고 시각장애인의 삶을 선택했다면 그 마음의 각오와 결심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결심했다. 시력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부터의 삶은 오직 정신을 올바르게 갈고 닦는 길밖에 없다고… 정신을 빛나게 갈고 닦아 성숙해지면 적어도 9100냥짜리 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등 인생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 속담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 신체 중에 눈이 갖는 의미나 역할이 움직이고 생활하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명을 하면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의 거의 전부가 없어져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더 큰 범주에서 생각을 달리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값으로 쳐서 ‘만 냥’이라고 친다면 우리의 육신은 ‘천 냥’이요, 신체를 이끌어가는 정신은 ‘9천 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은 삶의 주체요 목표이며 신체는 삶을 위한 도구이며 수단이다.
그리고 나에게 격려가 되는 이런 옛말이 있기도 하다. ‘양기발처 금석가투,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양기가 발한 곳에 금석도 능히 꿰뚫으며,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주자어류’에 씌어있다.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신체이기보다는 그 속에서 빛나는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 정신을 올바르게 갈고 닦아 사회에 기여하고 인정받으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보는 것이다.
신체가 멀쩡하지만 정신 자세가 바르지 못해서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이웃에도 해악을 끼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20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그러하고,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캠퍼스에서 총기 난사로 32명을 살상한 조승희가 또한 그렇지 않은가?
반면에 3중고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뚱이라고 치부될 수밖에 없었던 헬렌 켈러도 설리반 여사의 가르침을 통해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로 거듭나서 인류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인물이 되지 않았는가? 또 스티븐 호킹도 그런 몸으로도 빛나는 정신으로 아주 오랜 과거부터 저 먼 미래까지의 우주를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장애인으로서 정말 훌륭한 우등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비록 헬렌 켈러나 스티븐 호킹처럼 세상에 큰 자취를 남기는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장애를 극복하며 한 인생을 자신과 그 가족에게 충실하고, 행복이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온기를 사랑이란 이름에 담아 이웃과 조금씩 나누며 산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멋진 우등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나는 9100냥짜리 삶, 즉 우등 인생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 우리 구천백 냥짜리 우등인생 한번 살아보지 않을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