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을 다녀 와서
이진규 (임대업)
나는 며칠 전에 랍스터라는 걸 먹어 보았다. 우리말로는 바닷가재라고도 하는 이놈은 몸길이가 30에서 60센티에 이르는 일종의 새우류 생물로 몸집도 크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잡은 것을 수입해 오느라 가격도 꽤 비싼 편에 속한다. 지난 달 아들의 친구들이 우리 새집으로의 이사를 축하한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레스토랑이란 곳을 갔었는데, 4명이 먹고 18만원이나 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랍스터라는 그 물건 다시 먹을 게 아니었다. 값이 비싼 까닭도 있지만, 먹기가 얼마나 불편했던지. 조그만 게장도 먹기 귀찮은 나 같은 사람에겐 무어 그리 대단한 거라고 딱딱한 껍질을 깨고 부수고 자르고 파내기까지 하며 먹어야 한다는 게 마뜩찮았던 것이다.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고 영양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먹는 일 자체가 즐겁고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랍스터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서양 음식은 상당부분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많다. 요즘은 우리 어릴 때와 달라서 양식도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지만, 나는 아직도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먹을 때면 조금은 긴장을 하게 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음식이란 그저 편하게 먹으면 되는 것인데, 이놈의 양식은 포크는 오른손, 나이프는 왼손, 큰 나이프는 언제 쓰고, 작은 나이프는 언제 써야 한다는 등의 격식들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양식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이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 들어가서 식사라도 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게 되는 것이다. 격식뿐만 아니라 식기나 도구 자체도 거부감을 준다.
가장 대표적인 서양식 식사 도구는 나이프와 포크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름 아닌 칼이고 창이지 않는가? 그러니 양식을 먹는 일은 곧 칼과 창으로 ‘썰고 베고 찍는’일이니, 말하자면 이건 식사라기보다 차라리 무슨 대결을 치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랍스터를 먹는 도구들은 남을 해치는 잔인한 도구를 연상시킬 정도로 흉포해 보인다.
양식이 주는 불편함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그러한 살벌한 음식문화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들의 음식 문화는 서양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서양처럼 칼이나 창으로 '썰고 자르고 찍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적당히 '떠서 먹고 집어서 먹는 유순한 모습이 우리의 식사문화다. 요리하는 과정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밥상에는 칼이나 창이 오르지 않는 것이다. 앞에 놓인 요리와 결투라도 벌이는 것 같은 서양의 식사문화와 달리 우리네 식사문화는 사람이 음식과 호흡을 맞추어 음식과 혼연일체가 되는 일이며 몸을 소중히 공양하는 일인 것이다.
음식 문화에는 비단 인간과 음식 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잘 드러난다. 양식의 식사 풍경은 서로 떨어져 앉아 각자의 식기로 자기만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인지 레스토랑엘 가면 무언가 냉랭하여 푸근함이 없고, 인간관계도 사무적으로 흐르는 느낌이다. 우리의 한식점에서는 다르다. 펄펄 끓는 국물을 훌훌 마시며 오가는 대화도 분위기만큼이나 훈훈한 것이다. 우리네 집의 밥상 풍경은 또 어떠한가? 커다란 양푼에 온갖 나물을 넣어 썩썩 비벼서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퍼먹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한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지 않던가.
이렇게 본다면 단순히 밥 먹는 일 하나에도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와 자연관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과 대결하듯 칼과 창으로 썰고 자르고 찍어서 먹는 서양의 음식 문화에는 전쟁과 침략, 자연 파괴를 일삼아 온 그들의 역사가 그대로 대입되고 있다고 볼 때, 수저를 사용하여 떠서 먹고 집어서 먹는 우리의 식습관에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사랑해 온 우리 민족의 착한 심성이 온전히 녹아 있는 것이다. 식구란 말 속에는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있고, 심지어는 같은 직장이나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끼리도 서로 한 솥에 밥 먹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사회의 기초 단위가 말 그대로 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밥 먹는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는 서양 사람들과는 다른 애틋함과 인정이 오롯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인사를 할 때 '아침 드셨습니까?'라고 하며 약속을 할 때도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서양 문화와 풍조가 판을 치면서 우리의 밥상문화도 많이 변질된 것 같다. 서양 음식들이 외식 산업을 주도하고, 패스트푸드가 어린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유전자 조작 식품들이 식탁에 버젓이 등장하는 일들은 우리 밥 문화의 타락이며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먹고 사는 일만큼 소중한 일상이 또 있겠는가. 편한 가운데 식사를 즐겁게 한다는 것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문제를 곰곰이 따지는 것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그 신명나고 흐뭇한 식사시간을 우리는 맛과 품위로서 즐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