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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렌켈러의 꿈(조영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2-15 오후 3:55:31

조회수 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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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렌켈러의 꿈(조영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2-15 오후 3:55:31 (조회 : 2287)

헬렌켈러의 꿈
조영찬(시청각장애인)

  빛의 성녀라고 불리는 헬렌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녀는 시각청각중복장애인(이하 시청각장애인)이다. 우리나라에도 수천명에 달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있으며,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한 가지의 장애를 가지고서도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에서 두 가지의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설상가상도 이만저만이 아닌 신세다. 얼핏 생각하면 장애가 두 가지니 양쪽의 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맹학교에 가면 청각장애 때문에 강의를 듣지 못하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농아인학교로 간다면 이번에는 수화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농아인 문화에서 소외되게 마련이다.
  이처럼 시청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 사회에서는 청각장애 때문에, 농아인 사회에서는 시각장애 때문에 소외되어 있다. 따라서 시청각장애인들은 별도의 장애인으로 분류하여 그에 맞는 복지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시급하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는데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아직 시청각장애인이라는 분류 항목조차 없다.
  이러한 사회 환경을 비관하여 나의 삶은 방황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시각은 전맹(어렸을 때에는 준맹)이며 청각은 고도난청인 나는 8살 때는 일반학교에 보내졌는데 시각장애 때문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듬해에 맹학교로 보내졌는데 이번엔 청각장애 때문에 극심한 좌절과 방황의 날들이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받은 안마사 자격증도 나에겐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슴에는 늘 꿈이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불가능해 보였지만 결혼도 하고 싶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다.
  기나긴 어둠이 지나고 나의 삶에도 희망의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천사같은 여인을 만나 계절의 여왕의 품에서 백년가약을 맺었고 그녀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텍스트를 점자로 출력해주는 점자단말기인 한소네를 보급 받으면서 정보생활에도 획기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전자도서관의 수많은 파일들을 다운받아 허기져 있는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었고 게시판과 메신저 등을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도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의 헬렌켈러라고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교수와 인연이 닿았고 그가 공부했으니 나도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사렛 대학에 들어가 빛나는 학문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지금 나의 생리적 나이는 40줄에 접어들었지만 나의 정신은 10대처럼 싱그러운 꿈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눈과 귀 없이는 안 될거라고 여겼던 작가의 꿈도 마음의 뒤뜰에서 주어다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평생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고립에서 벗어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세상을 배우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벗 삼고 대화 기술 습득과 정서 함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삶의 질 향상과 사고의 전환을 통해 절실히 깨달은 바가 많다. 장애가 아무리 중증이고 사회가 아무리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방치하더라도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이때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져 삶의 의욕까지 상실해버린다면 그 기회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그의 삶은 끝까지 어둠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작은 꿈이나마 가슴에 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혹심한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의 태양이 뜨고 행복의 파랑새가 노래할 때가 반드시 온다.
  현재 한국에서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는 없지만 나날이 발전해가는 보조공학의 힘으로 많은 기회와 희망의 통로들이 열려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남은 공부를 마무리 하고 보다 원숙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배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도 장애와 암울한 현실을 비관하며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내가 체험한 희망의 빛을 전해주고 싶다. 육체의 눈과 귀는 질병과 사고로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슴 속에 고이 품은 꿈과 희망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다. 삶도 세상도 시시각각 변해가며 응달에도 볕들 날은 반드시 온다. 눈과 귀를 잃었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오직 하나뿐이며 세상 어느 누구 못지않은 소중한 삶임을 잊지 말자. 육체가 어두울수록 밝은 꿈과 희망을 품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가꾸어갈 때 우리는 누구보다 밝은 빛과 참된 소리를 듣는 헬렌켈러들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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