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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끄러움으로 남은 추억(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6-15 오후 4:15:32

조회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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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끄러움으로 남은 추억(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6-15 오후 4:15:32 (조회 : 2415)

부끄러움으로 남은 추억
이진규(임대업)

  그해 여름, 우리 동문들이 찜통더위를 피해 달려간 곳은 동해안의 어느 민박집이었습니다. 우리는 방에 들기 전에 식당에 모여 저녁식사와 함께 방 배정부터 받았습니다.
  그때 내게 배정된 방은 아주 작은 쪽방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방에는 두 사람만 배정되었습니다. 나와 짝이 되어 한 방을 쓰게 된 사람은 학창시절에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았던 까마득한 후배였습니다.
  녀석은 방에서 둘이 되자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진심으로 반가워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기숙사 시절에 떠돌던 그의 소문 한 가지가 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그의 손은 결코 반가운 손일 수 없었습니다. 그건 다소 어렴풋하지만 손버릇이 좀 있다는 기억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사정으로 제법 많은 돈을 지닌 채 떠나갔던 나는 경계의 촉수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담당 임원에게 동거자를 바꾸어 달라기엔 좀 야박한 것 같아 그냥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날의 순서를 마치고 다시 둘이 되었을 때 내가 물었습니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냐?”
  “별 볼일 없는 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요. 형님이 좋은 자리 좀 봐주이소.”
  이러는 겁니다. 그렇다면 더욱 녀석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후배는 엉뚱하게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겁니다.
  “형님, 이대로 그냥 자기에는 좀 섭섭하지 않습니꺼? 우리 나가서 한 잔 때리고 잡시더.”
  술의 유혹을 뿌리칠 만큼 야무지지 못한 나는 약시자인 그의 안내를 받아 어느 식당으로 갔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그는 호기있게 이런저런 값나가는 안주를 마구 시키는 거였습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주문에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체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날라 온 술과 안주를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술판이 끝날 즘, 그는 어느새 계산을 마치고 내 손을 당겨 숙소로 이끄는 거였습니다. 실로 내 예상을 뒤엎는 결과에 나는 놀랍고 당황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정말 그럼에도 잠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내 머리 속은 또 어느새 그 소문을 떠올리며 윗저고리에 들어 있던 돈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바지를 입은 채 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나는 또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의 행방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 모든 순서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는데, 뒤늦게 돌아온 녀석은 한 아름의 맥주와 마른안주를 내려놓으며 이러는 겁니다. 
  “형님, 한 잔 더 하입시다. 오늘 아니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거 아입니꺼."
  그렇게 시작된 술판은 그 술병들을 다 비우고서야 잠자리를 찾아 누웠습니다. 얼마쯤 자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였습니다. 일순간, 내 한 발이 무언가를 밟고 미끄러졌습니다. 휘청하던 나는 다시 균형을 잡고 미끄러진 원인을 찾아 허리를 굽혀 만져 보았습니다. 그것은 돈이었습니다. 한 뭉치의 만 원짜리 돈이 제 멋대로 흩어져 있었던 겁니다.
  나는 대뜸 녀석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조금 움칠했을 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드는 거였습니다. 흐트러져 있는 돈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남의 돈에 손을 대어 가지런히 챙겨주자니 그도 그리 썩 내키지 않아 나는 그냥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내가 잠을 깼을 때, 내 귓가에는 환한 목소리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형님, 아침 묵고 바로 떠난다캅디더. 우리 퍼뜩 씻고 아침 먹으러 가입시다.”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돈은 잘 챙겼냐? 그 많은 돈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자면 어쩌냐?”
  그러자 그는 이러는 거였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심더. 술김에 그랬던 듯싶습니더. 하지만 형님하고 둘 뿐인데 그게 무슨 문제입니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콱 막히면서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젊은 후배보다 통 작고 속 좁은 선배 하나가 거기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녀석과 한 방에서 기거했던 친구에게 그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확인해 본 결과는 글쎄 배가 고파서 어느 동실원의 삶은 달걀을 몇 개 슬쩍했다는 게 다였습니다.
  별것도 아닌 소문 하나를 움켜쥐고 녀석을 전과자 취급하며 그 사흘간 온통 신세만 지고도 못 미더워하며 바들거렸던 부끄러운 추억 하나가 지금까지 빚으로 남아 나를 옭죄고 있습니다. 말도 손도 한 번 더 가슴에 덥혀 내밀지 못한 내가 끝내 미운 이 빚, 무슨 수로 탕감할 수 있을지 그저 먹먹한 마음인 채 계절은 또 여름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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