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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향 집 (천병은)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3-29 오후 2:34:26

조회수 1652

게시물 내용
제목 고향 집 (천병은)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3-29 오후 2:34:26 (조회 : 1652)
고향 집
천병은(소설 작가)
 
  머나 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문득 부모를 떠올리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고들 한다. 부모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 아니 엄마를 떠올리다가 보면 절로 두 눈에 이슬이 맺힌단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그리움이란 화선지 위에 뭉클 그려지곤 하는 그림은 엄마 다음으로 고향이다. 글머리에 옮겨 붙인 모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찾아가 보았자 이 몸을 기다려 주는 사랑하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향, 혈기 왕성한 나이에 시력을 잃고 자포자기로 방황하던 기억만이 진하게 남아 있는 고향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살아생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처럼 내 흔적 모두를 챙겨 가지고 재활 기관을 찾아 상경했었다. 그나마 두 계절 방학 때에 맞춰 찾던 고향을, 어머니 돌아가시고 두 여동생마저 상경한 후론 발걸음을 끊게 되었다. 그렇게 10년 세월 지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 불현듯 밀려드는 향수의 파고를 나 또한 거역 못하고 아주 이따금 찾고 하던 고향. 그것도 고향 집이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팔각정 난간에 기대어 서서 아내와 어린 딸들에게 내 살던 동네를 어림잡아 가리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친구들과 떼를 지어 쏘다니던 선창, 부둣가, 삼학도를 거닐고 유달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내 살던 집이 있는 동네만은 극구 걸음하기를 거역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온갖 말로 부추겼지만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나 외면했던 고향 동네를 지난 1월 초순에 찾아들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많이 달라졌다는 풍문을 들은 터라 내심 걱정했지만, 내 기억의 퍼즐을 정확하게 짜 맞춰 준 택시 운전자를 만난 덕에 동네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를 쉬 찾을 수가 있었다. 여전히 골목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전봇대가 반가웠다. 신작로를 향해 입 벌린 골목으로 들어서자 30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좁다는 것 말고는 친숙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골목 초입에서 동네로 올라가는 계단까지의 거리가 부쩍 가까웠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계단이 끝나고 이어지는 비탈길, 그리고 다시 계단과 길, 이 모든 것들이 일정한 비율로 축소 시켜놓기라도 한 듯 좁고 짧았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다닥다닥 비비고 들어앉은 집들마다 인기척이 없다는 거였다. 군데군데 공터로 변한 집도 있었다.
  “아빠가 태어나고 생활한 곳이 이 산동네야?”
  딸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산동네란 말이 생소해 웃음이 나왔다. 오래 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때에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고 베어 낸 그 곳에 오막살이들이 차지하고 앉으면서 이루어진 동네였다. 산 본래의 형상을 따라 오밀조밀 조립된 그 자체만으론 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가 좀 비탈진 고지대란 생각만 했지 무신경하게 생활해 왔었다. 신작로 공동 수도에서 지게로 혹은 머리 위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먹으면서도 동네 사람 누구 하나 큰 불평이 없었다. 어쩜 모두들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몰랐다.
  “아빠, 이 동네를 재개발하려나 봐. 집들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인기척이 없는 게 이상해.”
  멀리 신작로 너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동네이니 그러기도 하겠구나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 우리 집을 찾았다. 그러나 금세 실망하고 말았다. 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누가 심어 놓은 푸성귀가 언 채 시들어 있었다. 누군가는 살고 있으려니 했던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가슴 한편에 싸한 아픔을 느꼈다. 집터도 마당도 터무니없이 좁게만 여겨졌다. 집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시멘트 구조물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그리고 앞 집과 옆 집 담장, 대문도 어루만졌다. 그러자니 공허함이 밀려왔다.
  다들 어디 갔을까. 소리쳐 부르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왔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저 멀리 바다로부터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꽁꽁 언 얼굴에서 슬픔의 그림자를 열심히 닦아냈다. 바람에 묻은 간기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2019. 4. 1. 제10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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