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우리의 보금자리는 어디에?
강시연
예식은 반년 이상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은평구에서 분당까지 먼 출퇴근 거리에 힘겨워하는 남편을 위해 신혼집을 먼저 구하기로 했다. 둘의 적은 월급으로 월세를 감당할 형편은 안 되었기에 양가 부모님과 상의 후 동원 가능한 예산 안에서 전세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위치를 정하려고 보니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나열해보니 첫째로 뚜벅이 생활이 조금이라도 덜 고달플 수 있도록 지하철역이 도보 10분 내로 가능한 곳, 둘째로 거실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 셋째로 지하나 최상층이 아닌 곳, 넷째로 가능하면 방이 3개인 곳, 마지막으로 주택 형태의 우선순위는 아파트, 빌라, 주택 순서일 것.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두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저렇게나 많은 조건을 나열하면서 신혼집을 구하려 했다니 당시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게 천운이라 생각될 정도다. 그런데 우리의 철없는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역을 선정하면서도 여전히 현실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남편의 회사는 분당 수내동이었고 나는 서울 봉천동이었는데 양쪽 모두 1시간 내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살펴보니 강남, 양재, 송파, 동작이었다. 서울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이런 곳들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갈 곳이 있을 거라며 유명한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서부터 각종 포털 사이트와 은행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부동산 검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을 뒤지고 또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희망은 머지않아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검색 지역은 서울에서 점점 경기도로 옮겨가 마침내 결국 남편 40분, 나 1시간 20분이라는 출퇴근 거리를 자랑하는 용인시 기흥구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우리의 신혼집은 지하철 분당선 신갈역과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24평 아파트였다. 방이 3개 화장실이 1개, 거실과 베란다가 있는 전형적인 복도식 아파트였다. 마침 집주인이 바뀌면서 도배와 장판, 싱크대 교체와 페인트칠까지 모든 수리를 해주겠다고 해서 입주할 날이 더욱 기대되었다.
사실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 거래는 인연이 따로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신혼집을 구하면서 그 말이 정말 맞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포털 사이트 부동산 서비스에 올라온 매물을 내가 발견해 남편에게 전화로 알린 뒤, 남편이 그것을 다시 시부모님께 알리고 바로 다음 날 시부모님이 직접 방문해 매물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전세 계약이 이루어지기까지 정말 단 이틀 만에 모든 계약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입주하기로 한 날은 그해 12월 23일, 남편이 먼저 간단한 짐을 꾸려 들어가기로 했고 나는 예식 일자에 맞춰 천천히 혼수를 채우기로 했다. 그래도 당장 필요한 것들은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준비를 하려고 아파트 평면도를 인쇄해 나름 머리를 굴려 가며 가구랑 가전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평면도만으로는 무리였다.
남편이 입주하는 날까지 신혼집에 실제로 방문해보지 못했던 난, 평면도의 수치와 남편이 이야기해준 내용만을 철석같이 믿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직접 보니 계산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것이다. 싱크대가 ‘一’자라는 말에 아일랜드 식탁을 주문했더니 막상 실제 싱크대는 ‘ㄱ’자 모양이었고, 옷방으로 하려던 곳 벽면에 옷장을 꽉 차게 놓으려고 했더니 평면도와 실제 수치가 달라 결국 옷장 한 통은 서랍장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직도 처음 신혼집에 갔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정말 이 사람과 결혼을 하는구나,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곳이구나. 다른 어느 때보다도 결혼이 내게 가까이 와있음을 느꼈고 그만큼 생각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만큼이나 아직은 허전하기만 한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그날 우리 부부는 한 번 더 굳게 약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껴주자고.
우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나열해보니 첫째로 뚜벅이 생활이 조금이라도 덜 고달플 수 있도록 지하철역이 도보 10분 내로 가능한 곳, 둘째로 거실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 셋째로 지하나 최상층이 아닌 곳, 넷째로 가능하면 방이 3개인 곳, 마지막으로 주택 형태의 우선순위는 아파트, 빌라, 주택 순서일 것.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두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저렇게나 많은 조건을 나열하면서 신혼집을 구하려 했다니 당시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게 천운이라 생각될 정도다. 그런데 우리의 철없는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역을 선정하면서도 여전히 현실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남편의 회사는 분당 수내동이었고 나는 서울 봉천동이었는데 양쪽 모두 1시간 내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살펴보니 강남, 양재, 송파, 동작이었다. 서울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이런 곳들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갈 곳이 있을 거라며 유명한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서부터 각종 포털 사이트와 은행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부동산 검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을 뒤지고 또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희망은 머지않아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검색 지역은 서울에서 점점 경기도로 옮겨가 마침내 결국 남편 40분, 나 1시간 20분이라는 출퇴근 거리를 자랑하는 용인시 기흥구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우리의 신혼집은 지하철 분당선 신갈역과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24평 아파트였다. 방이 3개 화장실이 1개, 거실과 베란다가 있는 전형적인 복도식 아파트였다. 마침 집주인이 바뀌면서 도배와 장판, 싱크대 교체와 페인트칠까지 모든 수리를 해주겠다고 해서 입주할 날이 더욱 기대되었다.
사실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 거래는 인연이 따로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신혼집을 구하면서 그 말이 정말 맞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포털 사이트 부동산 서비스에 올라온 매물을 내가 발견해 남편에게 전화로 알린 뒤, 남편이 그것을 다시 시부모님께 알리고 바로 다음 날 시부모님이 직접 방문해 매물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전세 계약이 이루어지기까지 정말 단 이틀 만에 모든 계약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입주하기로 한 날은 그해 12월 23일, 남편이 먼저 간단한 짐을 꾸려 들어가기로 했고 나는 예식 일자에 맞춰 천천히 혼수를 채우기로 했다. 그래도 당장 필요한 것들은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준비를 하려고 아파트 평면도를 인쇄해 나름 머리를 굴려 가며 가구랑 가전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평면도만으로는 무리였다.
남편이 입주하는 날까지 신혼집에 실제로 방문해보지 못했던 난, 평면도의 수치와 남편이 이야기해준 내용만을 철석같이 믿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직접 보니 계산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것이다. 싱크대가 ‘一’자라는 말에 아일랜드 식탁을 주문했더니 막상 실제 싱크대는 ‘ㄱ’자 모양이었고, 옷방으로 하려던 곳 벽면에 옷장을 꽉 차게 놓으려고 했더니 평면도와 실제 수치가 달라 결국 옷장 한 통은 서랍장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직도 처음 신혼집에 갔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정말 이 사람과 결혼을 하는구나,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곳이구나. 다른 어느 때보다도 결혼이 내게 가까이 와있음을 느꼈고 그만큼 생각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만큼이나 아직은 허전하기만 한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그날 우리 부부는 한 번 더 굳게 약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껴주자고.
(2018. 7. 15. 제100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