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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시생활에서 문명선진국 국민으로(조재훈)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08-14 오후 3:32:03

조회수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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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시생활에서 문명선진국 국민으로(조재훈)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08-14 오후 3:32:03 (조회 : 1983)
원시생활에서 문명선진국 국민으로
조재훈(전 한빛맹학교 교장)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80이 되었다. 경부선 완행열차가 12시간여에 걸쳐 운행될 때의 일이다. 휴가를 보내고 전방으로 귀대 중인 한 사병이 유치원 때부터의 자기 사연을 털어놓고 있었다.
  일본어를 잘해야 출세를 한다고 해 부모님이 유치원에 넣고 일본어에 몰두하게 했었는데 해방이 되자 우리말 공부를 다시 해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갈 때는 전국적으로 국가고시를 보게 되어 1차 입시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는 부패 정권에서 대학에 부정입학을 너무 많이 시켰다고 하여 유례없이 학사 고시라는 것을 보아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군무 행정도 엉망이라 입대적령 장정들이 누적되는 바람에 5·16에 고령자까지 한꺼번에 영장을 발부하여 나와 동갑인 그가 군에서도 고생이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일제와 해방 그리고 6·25와 4·19와 5·16 등 보통 사람은 평생 한 가지도 겪기 어려운 일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되는 세대, 이것이야말로 신의 저주가 아니겠냐고 했다. 그 장병과의 거리가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기만 해야 했었는데 그 사람과 가까이 앉은 사람 가운데는 신나게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고저와 장단을 나타내며 긴 시간을 이어가게 되었다. 야간열차라 승객들이 대개 잠에 빠지지만 그 장정의 고성과 언변에 그 객차 안은 코 고는 소리 대신 끌끌 혀를 차거나 호응한다는 뜻의 탄성이 가득하였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강제위안부뿐 아니라 군인으로, 보국단으로 죽음의 현장에 끌어갔다. 그리고 쌀은 군량미로 쇠붙이는 무기의 재료로 하다못해 송진까지 군수품으로 쓸어갔다. 두만강이란 말은 콩이 가득한 물이라고 하였다. 과연 우리 백성은 두만강 유역에서 나오는 콩깻묵을 먹고 살아야 했다. 또 한국전쟁 때 산골짜기에 처참하게 버려진 시체와 포탄에 부서진 건물과 가옥 등 참으로 이 땅이 국토가 성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한창나이인 1961년 불발탄피의 폭발로 실명까지 하게 되니 나는 참으로 저주받은 나이의 주인이 된 듯하였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를 거쳐 중국과 일본 등을 연구한 동아시아 전문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교수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저서에서 한국을 선진국처럼 잘 사는 나라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은 자기의 국제적인 위상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오히려 선진국 기술을 빌려 잘살게 된 데에 자격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진국민임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같았다. 저자는 어느 나라고 자기만의 기술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최상의 선진국인 미국도 유럽의 기술을 가져다 오늘날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지구상의 모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경쟁적으로 가져다 쓰며 발전을 꾀하지만 한국처럼 된 나라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신의 저주를 받은 줄만 알았던 내 나이 또래가 오히려 한국의 축복받은 세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 살던 고향에서는 불씨가 꺼지면 부싯돌로 불씨를 살려야 했다. 부싯돌을 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도 하고 날씨가 궂은날은 그 보풀에 불이 붙지 않아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원시생활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을 위해 불씨를 준 뒤 신의 노여움을 사서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벌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불을 사용하게 되므로 신의 영역에 오르게 되는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일본인이 공장제품과 함께 세력을 넓혀가며 성냥 같은 선진 물품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생산에서부터 인간에게 불씨를 주지 않으려는 제우스의 신처럼 한국인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은 거의 일본인이 맡아서 했다. 한국인은 자기 먹거리도 벌기 어려운 심부름꾼이나 해야 했다. 그래서 갑자기 해방이 되었을 때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성냥공장 하나가 없어 큰 곤란을 겪었다. 일본인은 성냥을 만드는 기술뿐 아니라 기와를 잇는 것 같은 하찮은 일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 양기와공이 없어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 눈썰미가 있으면 바로 터득할 일이지만 일본인은 그 기술마저 독점하였다. 근래에 갑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오야붕’으로서 ‘꼬봉’을 종 부리듯 하며 갑질의 재미를 톡톡히 누렸다. 정말 이때를 생각하면 우리 국민이 더 허리를 졸라매고 일본을 능가해야 하겠다. 우리는 일부 전자제품과 조선 그리고 반도체에서 전혀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일본을 추월하지 않았는가!
  우리 시각장애인은 일본인에 의하여 안마 등 공교육에 들어선 것으로 안다. 그러나 역학이나 악사를 비롯해서 세계 시각장애인 교육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장애인 교육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20년경부터 일본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지압도, 이미 그 이전부터 스님 한 분이 한국식 지압을 시행해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선진 교육이라 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료교육이 우리나라에도 고유한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싯돌로 불씨를 일으키던 시대에서부터 살아온 사람이다. 우리는 기후의 악조건에서 동계올림픽까지 치렀다.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대회 그리고 세계육상경기 등 큰 스포츠 행사를 치른 국가는 지구상에서 5개국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국민소득도 선진국 수준인 3만 불 시대에 문턱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저명한 외국 학자까지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하고 있으니 우리의 위상을 스스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역할도 맡을 각오를 해야겠다. 또 우리나라 전통접촉치료술도 시각장애인이 당당하게 보급해야 하겠다.
(2018. 8. 15. 제10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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