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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소함에 대한 단상(서관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28 오후 2:42:33

조회수 2910

게시물 내용
제목 사소함에 대한 단상(서관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28 오후 2:42:33 (조회 : 2910)
사소함에 대한 단상
서관수(공무원)
 
  식탁 옆을 지나는데 발바닥에 뭔가 밟혔다. 찰나의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뭐지? 청소를 왜 엉성히 했지? 분명 물휴지로 싹싹 닦았었잖아? 밥알인가? 손톱 조각인가? 아냐, 꿈틀거렸잖아? 그럼 벌레?’ 순간 50년 이상 수련해온 나의 반사신경은, 초속 눈 깜짝할 새로 발바닥의 이물질을 떼어 광속구로 냅다 내동댕이쳤다. 동시에 높은음자리표가 열 개쯤 붙은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미 온몸으로 아드레날린이 무제한 방출되었다. 셀 수 없는 소름들이 송골송골 화산처럼 돋았다.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는 팔다리를 지나 얼굴 3차 신경을 자극하더니, 마침내는 머리카락과 귓바퀴까지 쫑긋 세웠다. 검지손가락 끝에 아직도 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듯하였다. 손가락을 연신 허공에다 휘둘러댔다. 엉거주춤 의자를 잡고 서 있었다. 그것도 벌레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듯하여 뒤꿈치는 90도로 든 채로.
  비명소리에 아내가 달려왔다.
  “왜 그래?”
  “버버버벌~레에...”
  “안 보이는데? 도대체 벌레가 어디 있다고 난리야, 응?”
  “분명 꿈틀거렸어, 샅샅이 둘러봐!”
  “안 보이는데... 가만 보자... 혹시 이놈 아냐?”
  아내는 내 손에다 뭔가를 대어주었다. 잊고 있었던 공포가 다시금 폭발하였다. “꺅!” 나의 처참한 비명과 동시에 아내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놀라지만 말고 이거 한번 찬찬히 만져봐.”
  아내는 억지로 내손바닥에다 뭔가를 놓았다. 순간 꿈틀대는 느낌이 다시금 들었다. 동시에 뿌리치려는 나를 제지하면서, 아내는 손바닥에다 그놈을 꼬옥 눌러주었다. 그냥 손바닥에 올려두었을 때는 꿈틀거리던 그놈이, 꼬옥 눌러대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벌써 죽어버렸나?’ 직접 만져보라는 아내의 강요로, 조심조심 그놈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느다랗게 배배 꼬인 주방용 철수세미 한 올이었다. 아마도 철사가 탄력이 있다 보니 감각적으로는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나 보았다. 그렇게 늙수그레한 중년 아저씨의 민망스런 벌레 소동은 막을 내렸다.
  며칠 뒤, 거실에서 딸내미의 비명이 들렸다. 나가보니 딸내미는 연신 살충제를 뿌려대면서 절규하고 있었다.
  “아빠, 벌레! 징그러워. 발 많은 벌레 있잖아. 그놈이야”
  “괜찮아, 안 물어. 흥분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안 돼! 어떡해! 어떡해!”
  딸내미는 온갖 호들갑을 떨어가며 살충제를 무제한으로 살포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을 가장한 체, ‘괜찮아~~’를 느릿느릿 연발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놈일까? 이쪽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 생각이 복잡했지만 억지로 미소까지 지으며 여유를 부렸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발이 소파 위로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벌레가 움직임을 멈추자,
  “아빠, 죽었나 봐. 안 움직여.”
  “그래, 이제 됐으니 그만두고 휴지로 싸서 버려.”
  “악! 난 못 해. 아빠가 해. 혹시 다시 살아나면 어떡해.”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벌레 치우는 일마저 딸내미에게로 슬쩍 미루었다. 사실 죽은 벌레라도 만지기에는 뭔가 꺼림칙했고, 나는 지극한 태연을 가장하고서 종용해 봤지만 실패하고 만 것이다. 딸내미는 혹시라도 벌레가 다시 살아날까 봐, 부엌에서 바가지를 가져와서는,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실신한 벌레 위에 봉긋한 봉분을 만들어 눌러두었다. 나도 그제서야 소파에 올렸던 발을 슬그머니 내렸지만, 안심도 잠시,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아빠로서 아니 아빠 이전에 이 땅의 한 남자로서, 까짓 벌레 한 마리도 못 만지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다. ‘그냥 해치워버릴까?’ 만용을 부리려 했지만, ‘꿈틀거림과 그 많은 발들’을 상상하니, 저절로 오금이 오그라들었다. 별수 없이 아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다시금 발을 소파에 올렸다. 그때 마침 외출했던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 저기 벌레 있으니까 휴지로 싸서 버려. 아빤 안 보여서 못 하겠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 녀석은 휴지를 둘둘 말아서는 벌레를 화장실 변기에다 수장시켰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내 속도 뻥 뚫리는 듯했다. 그렇게 한바탕 벌레와의 치열한 전투는, 나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승전 처리되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사노라면 착각 때문에 사소한 공포를 느낄 때도 있고 약간은 혐오스런 상황일지언정 장애를 핑계로 슬쩍 비켜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안 보인다는 것이 곧 불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눈이 건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 누구에게나 사소한 불행감과 사소한 행복감은 공존한다.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공포와 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 과연 그 경중을 단언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은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어려움이, 비장애인은 보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는 고통스런 순간이 있다. 이 또한 그 경중을 어찌 측량할 수 있으랴.
  삶은 누구에게나, 그저 사소한 이벤트의 나날들. 삶이란, 멈칫 놀라기도 하고 슬쩍 외면하기도 하는 흥미진진한 무대. 행복이란, 각자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맛보는,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나 당연한 그래서 오히려 사치스런 일상의 희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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