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순수 시각장애인
서관수(점자도서관 종사자)
새벽 6시. 일부러 큰 소리로 하품을 내지르고는 일어났다. 여느 일요일 같으면 10시쯤에나 겨우 정신을 수습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내가 챙겨준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집을 나섰다. 대구국제마라톤 10킬로미터 구간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휴일인데다 이른 시각임에도 지하철이 붐볐다. 활동보조인과 약속한 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그랬다. 다들 마라톤 참가자들이었다.
셔츠를 갈아입었다. 혹시나 해서 반바지를 속에 입고서 긴 체육복을 덧입었었다. 그렇지만 날씨가 선선해 긴바지를 입기로 했다. 그런데 노선을 안내하며 같이 뛰어줄 파트너는, 자신도 핫팬츠를 입었으니 같이 반바지를 입자고 했다. 운동에 있어서 복장은 기본이란다. 바지 길이만큼 시간이 단축된단다. 그녀는 과거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의 속내는 달랐다. 제대로 연습도 안 했기에 완주가 목표였다. 게다가 몸매 역시 마라톤용이 아니었다. 반바지 입고서 똥폼 잡다가 중도에 포기라도 한다면 그런 꼴불견이 있으랴. 우리는 손목을 끈으로 연결하였다.
함성과 함께 출발! 달리기 자체에도 자신이 없었지만, 사람이 하도 많아, 제대로 발을 뻗을 수도 없었다. 숨소리와 발소리들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이내 숨이 차올랐다. 반환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직 2킬로미터도 채 못 왔단다. 파트너는 선수 출신답게 구령까지 붙여주었다. 아주 힘이 남아나는 모양이었다. 뛰면서 전화까지 받았다. 왼손에는 전화기, 오른손은 끈으로 내 손목과 묶여있었는데도, 그녀의 질주는 우아하기만 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활력 넘치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유능했으며 예의도 발랐다.
마침내 반환점.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좀 살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 쉬었더니 더는 뛰고 싶지가 않았다. 5킬로미터나 논스톱으로 달려온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숨을 고르며 터벅터벅 걸었다. 파트너는 연신 달리자고 했다. 이렇게 걷기 시작하면 완주하기 힘들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남자라는 불필요한 자존심이 일어났다. 다시 뛰었다. 잠시 쉬었더니 한결 나은 듯도 했다. 하지만 이내 숨이 차오르고 입이 바싹 말랐다. '아무리 육상선수 출신이래도 그녀는 여자 아닌가' 죽을힘을 다해 나는 달려야만 했다.
파트너가 자신의 전화기를 받아달란다. 양쪽 손이 모두 부자유스러우니 아무래도 부담이었으리라. 아무리 선수 출신이라지만 마라톤에 전화기라니, 이건 숫제 샌들 차림에 완전군장 천리행군 아닌가. 오히려 고소했다. 받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내 몸이 천근이라 어디 한군데 정도는 떼 주고 싶은 심정인데 웬 전화기. 근데 또다시 남자라는 불필요한 자존심이 솟아나고 말았다. 짜증이 났지만, 억지로 웃어 보이며 전화기를 받았다. 손목을 서로 연결한 '사랑의 끈',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한계 상황에서도 사랑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한참을 달렸지만 그녀는 전화기를 받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양손이 모두 족쇄로 채워진 셈이었다. 왼손은 끈, 오른손은 전화기. 맨몸으로 달리기에도 급급한 내게 이런 형벌이라니. 이제는 사랑의 숭고함보다는 오히려 사랑의 숙명적 고통이 느껴졌다. 점차 ‘데드 포인트(격심한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개시 후 얼마 안 되어 매우 고통스럽게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전화기는 전화기가 아니었다. 아령처럼 느껴지던 전화기는 이제 바벨처럼 나를 짓눌렀다. 나는 역도와 마라톤을 동시에 하는 새로운 종목을 개척하고 있었다. 전화기를 돌려줄 수는 없었다. 나는 역사이자 마라토너이며 또한 남자 아니던가. 슬며시 전화기를 뒷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얼마나 가벼운지, 순간적으로 스프린터처럼 질주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기는 단거리 트랙이 아니라 신성함의 극치 마라톤 현장이 아니던가. 폭발하던 질주는 이내 사그라지고, 누군가 뒤에서 엉덩이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가속력과 중력 사이에서 허둥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완주메달을 흔들며, 아이들과 아내에게 마라톤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물론 육상선수 출신의 파트너 전화기까지 대신 들어준 전설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선거철 정치인마냥 공약을 남발했다. 비록 이번 기록이야 1시간 6분대이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1시간 이내로 기록을 단축한다는 거, 전화기를 들고 뛰었으니 다음에는 10킬로미터 정도야 모래주머니라도 차고서 뛰겠다고, 언제 기회를 봐서 42.195에도 도전하겠다고. 아이들의 놀라는 표정과 아내의 흐뭇한 미소를 뒤로 한 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발가락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이었다. 특히 둘째 발가락은 아예 발톱이 빠질 듯이 덜렁거렸다. 무릎이 쑤셔서 파스를 발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돌아눕기조차도 힘들었다. 오른쪽 발을 조금이라도 움직이자니 무릎이 사정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전전반측.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어제의 영광은 어딜 갔는지, 파스 냄새와 통증만이 남아 있었다. 세수조차도 불편했거니와 걷는 자체가 힘들었다. 가족들 앞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듯 움직였지만,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출근길, 지하철 계단을 제대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계단마다 두 발을 한데 모았다가, 조심조심 다음 계단으로 한발씩 옮겨야만 했다. 중복장애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다리가 불편해지자, 시각장애뿐이었던 어제의 내가 너무나 그리웠다. 뛰듯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시각장애인 서관수가 눈물나게 그리웠다. 빨리 다리가 나아, 순수한 시각장애인으로 돌아가서 행복한 시각장애인이 되고 싶었다.
겨우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때 문득, 어지럼증 같기도 하고 환청같기도 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연습도 없이 마라톤 나가지 마라! 뛸 때 쓸데없이 전화기 가져가지 마라! 풀코스, 아예 꿈도 꾸지 마라! 시각장애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시각장애뿐이라면 오히려 감사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