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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잔인한 오월(박향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31 오후 2:45:22

조회수 2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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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잔인한 오월(박향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31 오후 2:45:22 (조회 : 2480)
잔인한 오월
박향숙(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공동대표)
 
  마음이 술렁거리거나, 젖은 가슴을 말리고 싶을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우리집 옥상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오늘처럼 그곳에서 나를 부른다.
  흰나비 한 마리 기다린 듯 반기며 앞장을 서고, 삼십여 평 남짓에 들어앉은 봄 손님들이 푸른 날숨으로 내 찌든 폐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간밤에 내린 비로 더욱 말쑥해진 블루베리나무가 여린 손을 흔든다.
  이 나무는 일곱 그루 중 막내로 작년 늦가을에 어려워도 이웃을 돌볼 줄 아는 한 친구가 축하의 마음을 담아 보내 온 것인데 어린 몸으로 겨울을 잘 견뎌낼지 걱정이었으나, 그 친구처럼 꿋꿋한 모습으로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블루베리에 얽힌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나비는 품이 넓은 9년생 블루베리나무와 앵두나무 사이를 오가며 약속을 지키러 온 그녀처럼 기억을 두드린다. 나에게였을까, 자신에게였을까... 파리한 모습으로 기침을 하며 “블루베리랑 앵두가 열리면 옥상 구경하러 꼭 갈께.” 다짐하듯 강조하던 그 목소리에 눈가를 훔친다.
  설마설마하던 그는 작년에 그 열매들이 익어갈 무렵 우리 친구들의 속을 찢고 날아갔다.
그 봄 옥상은 나에게 기피처가 되었다. 유난히도 충실히 열린 블루베리가 가지를 찢을 듯 휘청거리고, 앵두는 왜 그리 곱고 탐스러운지 더더욱 나를 처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카프의 여인이었다. 늘 어깨에서 물결치던 그를 닮은 아름다운 무늬들, 무엇보다 감성의 온도가 작동하는 향기로운 가슴... 그와 나 사이에는 시라는 물길이 트여 있어서였는지 그녀의 흔적들이 곳곳에 살아 있다.
  겨울이면 옥색 바탕에 소담스런 붉은 작약꽃이 만발한 순모 목도리가 따뜻하게 목을 감싸주고, 여름이면 어깨는 망사수로 장식되어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실크로 만든 시원한 연분홍 잠옷이 잠자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 외에도 이름도 생소한 몇 개의 꽃분들이 베란다며 옥상에서 푸른 숨결로 내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오간 정이 물건뿐이겠는가. 셀 수 없이 각인된 사연들이 가지마다 피어난다.
  백세 인생을 노래하는 이때에 생의 삼분의 일이나 빼앗아간 신의 계산법을 알 수는 없으나, 아쉽고, 억울하여 떠난 이나, 남은 이나 더욱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것이다.
  오월은 이렇게 해마다 찾아오는데 너는 왜 오지 못하고 봄의 전령만 보내어 날도 없는 봄기운으로 가슴을 베어내는지! 다행히 너는 네가 남긴 시집 속에 살아 있기에 위로를 받으며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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