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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닌 척 허세 부리지 말자(김종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4 오전 11:16:08

조회수 2555

게시물 내용
제목 아닌 척 허세 부리지 말자(김종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4 오전 11:16:08 (조회 : 2555)
아닌 척 허세 부리지 말자
김종산(안마사)
 
  몇 년 전에 타계하신 성철 스님의 법어 중에 “산은 산이어야 하고 물은 물이어야 한다.” 라는 법어가 생각난다.
  필자가 우매한 까닭에 깊은 뜻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자기 위치와 본분을 잘 알고 허세와 탐욕을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 보았다.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 허세를 부리다가 낭패를 당한 일을 소개함으로써 중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 여러분들의 생활에 작은 경종을 울릴까 한다.
  내 나이 8세 때부터 점점 시력이 약해지더니 결국 12살에 서울맹학교 초등부 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래도 제법 시력이 있어 전맹 학생들의 심부름도 하고 길 안내도 많이 했었는데 날이 갈수록 시력이 약해져 18세 때부터는 불빛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낭패를 당한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 되어 충남 당진에 있는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지난 여름방학 때까지만 해도 약간 보였기 때문에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고 잘 다녔는데 이번 겨울방학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아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계속 남아 있을 수도 없기에 지팡이를 짚고 용산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당진행 버스에 무사히 몸을 실었다. 2시간 반쯤 달린 끝에 목적지인 당진에 도착하여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문제는 정류장에서 우리집까지는 200m 정도 떨어져 있고 마차나 손수레가 다닐 수 있는 폭이 약 5m 되는 길이 있으며 길 중간에 폭이 약 10m 되는 농수로인 개울물이 가로로 흐르고 있고 그 위에 폭이 5m 쯤 되는 난간이 없는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 길을 지나가야 우리집에 도착할 수 있는데 나는 지팡이를 가방에서 꺼내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동네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짚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 창피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조심해서 가자, 내가 어렸을 때 이 길을 매일 뛰어 다녔고, 여름에는 개울물에서 하루 종일 헤엄치며 놀기도 했었는데 눈이 안 보인다고 지팡이를 안 짚는다고 못 갈 게 뭐냐?”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집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었다. 얼마쯤 가니 드디어 다리가 나왔고 이때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겨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리 중간쯤 왔을 때 방심해서일까, 왼발을 내딛는 순간 바닥이 밟히지 않고 내 몸이 공중으로 부웅 뜨더니 개울에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는데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서 물이 얼지 않아 다치지는 않았지만 온 몸이 진흙탕 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멀리서 이런 내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알렸고 놀라 달려오신 어머니와 아버지는 개울에서 기어 나온 나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셨다. 나 역시 실명한 것이 너무 서럽기도 하고 지팡이를 짚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어 엉엉 울었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아닌 척 하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것이다.
  그 후로 40여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어디를 가든지 지팡이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나를 안전하게 안내하고 있다. 요즘 필자가 만나 본 중도에 실명한 분들 중에 밖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며 대인 기피증을 앓고 있는 분들도 제법 된다. 그리고 지팡이 짚는 것을 창피해 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만나 봤다.
  며칠 전에는 한 전맹 시각장애인이 지팡이 없이 전철을 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왜 지팡이를 안 짚느냐고 물으니 그 분의 대답이 자기는 예민해서 전철역에서는 지팡이가 없어도 잘 다닌다는 것이다.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불편해 하지 말고 창피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아닌 척 허세 부리지 말자. 오히려 시각장애를 즐기면서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훨씬 더 불편한 장애인들이 훌륭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이왕 한 세상 살아가는 인생살이라면 풍요롭고 즐겁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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