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고 싶은 이야기
방울(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재활훈련 수료생)
예전에 어떤 어르신이 글을 몰라 나에게 간단한 서류 작성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은행이었고 내가 도와 드린 건 고작 이름과 주소 작성뿐이었다. 내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르신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럽다는 듯이 부탁했고 돌아서 가실 땐 굉장히 고마워 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난 글자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자존심 상하는 일도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급작스럽게 시력과 시야를 상실하고, 시각장애인이 되어버린 나는 생각한다. “내가 글자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기존에 대수롭지 않게 해왔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대단한 일이 되어 버렸구나...”라고. 내가 그 어르신처럼 글자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멀게 되면서 생각지 못한 상황들에서 자존심을 구겨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자를 만난 지 어느덧 8개월째다. 예전에는 점자가 있는 세상은 나와는 관련 없는 영역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기 걸음마하듯이 점자를 읽고 있다. 처음에 점자를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구기는 일을 줄이고 싶었을 뿐이다. 나 스스로 은행 업무도 보고, 선거에도 참여하고도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점자를 접하게 되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나보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변한 건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점자’라는 아이를 만난 나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머리와 가슴이 타협하지 못하고 죄 없는 점자만 마음속으로 거부했다. 점자를 배우는 동안 자존심 상해서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의 장애를 극복했다기보다는 승복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점자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전하고 싶다. 이제야 “고맙습니다”라고 수줍게 고백도 해본다.
점자를 배우면서 ‘공부’한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에게만 해당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자를 처음 접할 때부터 난 지극히 훈련으로만 느껴졌다. 흔히들 ‘이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할 때 나는 헛소리 집어 치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자를 읽을수록 마음의 눈으로 하는 훈련이 분명함을 느낀다. 하기 싫어하는 마음만 가득하고 적대시하는 마음으로 점자를 잡을 땐 점형을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정안인이 마음의 동요가 생긴다 해서 눈앞의 글자가 안보이거나 달리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눈이 급격히 나빠질 때 두려움이 점점 불어났고, 심장은 요동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지만, 나의 부재를 슬퍼할 이들을 외면할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할 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말이 떠올랐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지어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나는 부정했다. “살고자 하면 살 것이고, 죽고자 하면 정말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 앞에 ‘어떻게’를 넣어 살아남고 존재해야 할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정안인이 아니다. 눈 상태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어떻게’를 고민하다가 점자를 만났고 어느덧 우리는 8개월째 아웅다웅 하고 있다.
시각장애가 생겼다 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는 없기에 배우기 시작했지만, 점자를 배우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타고난 촉각이 뛰어나지도 않은 나에게 왜 이런 장애를 준 건지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기도 했다. 다시 돌이켜 보면 더디긴 하지만 분명 손에서 놓지 않고 매진하다보니 어느 순간 훈련이 되는 것을 느낀다.
점자를 배우면서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기 싫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자를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나아가 내가 고립되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인생 공부’임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내가 점자와 동행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하고 싶다. 점자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내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