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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월대보름(윤영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2-29 오전 10:12:47

조회수 2808

게시물 내용
제목 정월대보름(윤영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2-29 오전 10:12:47 (조회 : 2808)
정월대보름
윤영식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냈던 정월대보름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그때만 해도 겨울이 되면 시골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어요.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정도였고, 아이들은 뛰어놀기 바빴지요.
  보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 남자들은 산으로 땔나무를 하러가요. 이날은 밥을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도 아홉 짐을 해야 한다는데, 밥을 많이 먹고 건강해져서, 나무를 하루에 아홉 짐을 해올 만큼 부지런하라는 뜻이래요.
  엄마는 내일 지어먹을 오곡밥 준비를 하고 각종 나물 반찬을 만드시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김치를 쭉쭉 찢어 넣고 부친 빈대떡도 맛이 있지만 찹쌀 반죽을 얇고 둥글게 펴서 그 속에 동부가루를 넣고 둘둘 말아 들기름에 튀긴 부꾸미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저녁을 먹고 해가 넘어가면 장난감 딱총에 화약을 넣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뻥뻥 터뜨리는데 그러면 귀신이 놀라서 도망간대요.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엄마가 말하자, 동생은 겁이 나서 잠을 안 자려고 벽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다가 이불도 못 덮고 옆으로 쓰러졌어요. 잠든 동생을 이불 위에 반듯하게 눕혀주고 눈썹에 밀가루 반죽을 붙여두면 아침에 일어난 동생은 눈썹이 하얗게 됐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형아는 엄마한테 야단을 맞지요.
  형들과 누나들도 늦도록 놀다가 잘 때는 신발을 방안에 들여놓고 자요. 잘 때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는 신을 신고 가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전설이 있어요. 미신이지만 어릴 적에는 겁이 나서 신발을 방안에 들여놓고 자기도 했었어요.
  보름날 아침이 밝았어요.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럼을 깨물어요. 부럼은 그냥 깨물지 않고, “아이쿠 부스럼아!” 하면서 깨물었어요. 그래야 부스럼에 안 걸린다네요. 부럼은 주로 호두나 밤, 땅콩 등을 깨물었는데 잣은 귀해서 구경하기가 어려웠지요.
  부럼을 깨문 영식이는 벌떡 일어나서 삼식이한테 더위를 팔러갔어요. 삼식이네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어요. 대문 앞에서 영식이가 큰 소리로 삼식이를 불렀어요.
  “삼식아아아!”
  삼식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대답을 안 하네요.
  조마조마해진 영식이는 다시 한 번 삼식이를 불렀어요. 그러자 삼식이가 대답했어요.
  “응! 왜?”
  영식이는 이때다 하고 얼른 더위를 팔았어요.
  “내 더위 사가라아아.”
  더위를 팔고 돌아오는 영식이는 올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할 삼식이를 생각하자 조금 미안해졌어요. 더위를 팔아서 기분이 좋아진 영식이는 동네 형들이 대문에 걸어 둔 복조리를 내려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아버지께 드렸어요. 아버지는 복조리 속에 10원짜리 세 장을 넣어서 안방 문 앞에 걸어두셨어요.
  엄마와 누나가 아침상을 차렸어요. 상 위에는 쌀, 보리, 콩, 조, 수수 이렇게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지은 오곡밥과 고사리, 미역취, 곰취, 말린 버섯, 외에도 시래기와 김치, 동치미 등이 놓여 있어요. 오히려 명절 때보다 더 먹을 게 많아요. 어른들은 귀밝이술도 마셔요.
  아침을 먹고 나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모여서 놀아요. 어른들은 윷놀이를 주로 하고 청년들은 자치기나 축구를 하고, 아이들은 제기차기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하면서 놀아요.
  밤이 되면 뒷동산으로 달구경을 가요. 가난한 집안을 돕느라고 혼기를 놓친 삼식이 큰누나가 달을 보고 두 손 모아 소원을 비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려요. 두식이 큰형은 오래전부터 짝사랑을 해오던 삼식이 누나한테 장가들고 싶다고 큰소리로 소원을 빌었어요. 삼식이 누나와 두식이 형의 눈이 마주치고 전기가 찌르르 흘렀어요.
  아이들은 달구경을 갈 때 짚을 홍두깨 정도 되게 묶어서 가지고 가요. 짚을 묶을 때는 자기 나이와 같은 숫자만큼 묶어야 한대요. 보름달이 떠오르면 그 짚방망이에 불을 붙여서 다 탈 때까지 들고 있으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나중에는 깡통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길게 줄을 만들어 그 안에 불을 붙인 솔방울을 넣어서 빙빙 돌리면서 불꽃놀이를 했지요. 불붙은 깡통이 빙빙 돌아가는 것을 멀리서 보면 진짜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멋있어요.
밤이 깊어지면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담배내기를 하기도 했고, 형들과 누나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아이들은 그 틈에 끼어서 구경하다가 잤어요.
  그 시절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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