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기쁨 덕에 늙을 틈이 없어요”
글 유인종 편집부 / 사진 송은지 핀스튜디오
요즘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소설이 라고 평했던 <웃는 남자>를 녹음하고 있다. 상하권 모두 5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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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까 말까 내숭떨던 벚꽃이 황당하게도 하룻밤 사이에 만개한 4월의 봄날,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자리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녹음도서 제작실에 들어섰다. 제작실 입구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끝의 녹음실에서 빅토르 위고의 두 권짜리 장편소설 <웃는 남자>를 녹음하던 황임숙(78) 씨가 환하게 웃으며 <아산의 향기> 취재팀을 맞았다.
오랫동안 대가 없이 봉사해온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맑은 얼굴과 환한 미소가 그녀에게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모처럼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만지고 나왔다”고 맑은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는 읽던 책을 덮으면서 안경을 벗더니 위쪽 눈꺼풀에서 테이프를 떼어냈다. 서너 시간 책을 녹음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꺼풀이 처지는데, 이 직업병을 막기 위한 나름대로의 대처법이라고 했다. 음성도서로도 불리는 녹음도서는 글자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나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지체장애인 등 독서 장애인을 위해 자료를 테이프나 CD, MP3 등에 녹음한 도서를 말한다. 녹음 형태에 따라 테이프 녹음도서, 오디오 CD도서, MP3 CD도서 등으로 구분된다.
테이프 녹음도서는 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만든 대표적인 아날로그 녹음도서이고, 오디오 CD도서는 책 내용을 디지털 파일 형태로 CD에 저장한 도서다. MP3 CD도서는 많은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녹음도서로서 MP3 플레이어나 PC・휴대폰 등으로 이용 가능하며, ARS 전화로도 들을 수 있다.
“50세 이전엔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녹음도서를 대여하는 도서관은 황임숙 씨가 봉사하는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의 점자도서관을 비롯해서 전국에 40여 곳이 있다. 복지관의 전화도서관과 서울 회현동의 종달새전화도서관 등은 ARS 전화도서도 서비스한다. 필요한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만 알면 전국 어디에서나 장애인 도서대출 택배서비스인 ‘책나래’를 통해 테이프나 CD를 무료로 대출받을 수 있다.
녹음도서는 시각장애인 같은 독서 장애인들에게 독서 기회를 제공하면서 정보 취득 및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황임숙 씨 같은 도서녹음 봉사자들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녀가 복지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49세이던 1986년 1월 4일이었다. 슬하에 딸 둘(곽현・55, 곽인・51)과 아들(곽건・46)을 둔 그녀는 둘째딸을 독일로 유학 보낸 뒤 가벼운 우울증이 왔다. 유학 경비를 넉넉하게 마련해주지 못한 엄마의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도서녹음 자원봉사를 하던 , 나이차가 얼마 안 나는 조카(소금자・75)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는 ‘책벌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그녀에게 자신이 하는 봉사활동을 권했다.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다 보면 마음속 아픔이 잦아들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저는 대치동에 살았어요. 지금이야 복지관 부근에 지하철 역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여기는 시골이나 다름없었어요. 어렵게 이곳을 찾아왔더니, 세상에…. 시각장애인을 가까이에서 본 게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니는 그분들을 보면서 크게 회개했어요. 그분들은 눈이 하나만 있어도 좋을 텐데,저는 두 개씩이나 있으면서도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아왔거든요.”
그날부터 녹음봉사를 시작했다. 지금이야 녹음봉사자 모집 공고가 나가면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지원자가 몰리지만, 그때는 봉사자가 귀한 시절이었다. 더욱이 음악대학을 지망했을 정도로 목소리가 곱고 발음이 분명해서 그녀는 녹음봉사자로 적격이었다.
“당시 녹음봉사자는 13명밖에 안 되었어요. 지금은 130명이 넘어요. 요즘 봄・가을로 봉사자를 모집하는데 경쟁률은 보통 3대 1 이상이죠.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이 지원해요. 하지만 이 일이 보기보다는 만만치 않아서 1년 이상 계속 봉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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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권 이상의 책 녹음
녹음봉사와 그녀는 천생연분이었다.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지금까지 30년째 봉사를 해오면서 그녀는 매주 월~금요일 오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복지관에 나와 책을 녹음했다. 두 살 위인 남편 (곽연)이 입원했을 때도 녹음을 마친 뒤에야 병원으로 가서 간병했다. 복지관이 문을 닫는 휴일이 돌아오는 게 싫을 정도였다.
그녀의 남편은 고려대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서울대 졸업 뒤 고려대 철학과와 연세대 작곡과로 연거푸 편입해 졸업했고, 오탁번 시인이 작사한 고려대의 ‘응원의 노래’를 작곡했다. 정년까지 고려대에서 음악 강사를 지내면서 매년 입학식 때 신입생들에게 교가를 가르쳐 주었으며, 2005년 70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에는 시신을 고려대 의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녀도 여느 가정처럼 남편과의 다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애인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그녀는 마음가짐을 확 바꾸었다. 복지관에 간다는 이유로 가사에 소홀하다는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더욱 열심히 했고, 맑은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부부 갈등을 최대한 조정했으며, 규칙적으로 수영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했다.
“남편이 먼저 가고, 자녀들은 모두 독립해서 요즘은 서울 무악동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요. 새벽 5시 반에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첫차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5호선을 갈아탄 뒤 종점인 상일동역에서 내려 15분쯤 걸어오면 7시 무렵이 되죠. 그때부터 서너 시간 녹음하고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 저는 말이에요, 여기 왔다 가면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정말 행복해요.”
지금까지 그녀가 녹음한 책은 1천 권이 넘는다. 복지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녹음도서가 총 13,000여 권이므로 10퍼센트 가까운 분량을 혼자 녹음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성인들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한 권이 채 안 된다. 문화체육 관광부 등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7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독서시간도 30분 이내로, 인터넷 사용 2.3시간이나 스마트폰 이용 1.6시간에 비해 너무 적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녹음한 책만 1년에 30권이 넘었다. 책을 읽을 때 눈으로 글자를 보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에는 시간 차이가 많이 난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녹음할 때는 긴장감 때문에 책 읽는 진도가 빨리 나갈 수 없을 터인데, 그런 녹음을 매년 30권 이상 해왔다는 것은 그녀가 보통 이상의 열정과 체력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녹음한 책들은 무척 다양하다. <열국지>(전 10권), <삼국지> (전 10권), <객주>(전 10권), <임꺽정>(전 10권), <상도>(전 5권), <대망>(전 22권) 같은 대하소설에서부터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등의 고전뿐 아니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최근 인기 소설도 녹음했다. 또 실용서인 <한방 명의 베스트>, 베스트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들도 그녀의 녹음 목록에 들어있다. 받은 게 더 많은 행복한 시간 초기엔 녹음실에 냉난방이 안 돼서 어려움이 많았다. 방음 처리된 녹음실은 여름이면 한증막 이상의 찜통이어서 얼음 팩을 몸 여기저기에 대야 했고, 겨울에는 난방매트나 전기장판을 의자에 깔아야 했다.
“아무래도 문학 서적이 주를 이루지만, 경제나 철학・역사・건강・음식 등 여러 분야의 책을 녹음하고 있어요. 책은 대체로 복지관의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선정하고, 봉사자들이 추천하기도 해요.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지혜가 담긴 책들이 좋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2013년에 녹음한 <안데르센 동화집>을 주위사람들에게 읽어 보라며 권하고 있어요.”
그녀에게는 고정 팬들이 많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 오랫동안 책을 읽어 달라”고 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열성팬도 있고 ,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눈을 잃은 60대 남성은 그녀를 직접 만나러 와서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점자로 쓴 팬레터도 적지 않게 받는다는 그녀는 “인기도 있지만 ‘황임숙, 이제 그만 읽으라’는 안티 팬도 있다”면서 웃었다.
그녀는 1937년 황해도 개성에서 2남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뒤 서울대 교사양성소를 마쳤다. 23세에 결혼한 뒤에는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다.
1986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을 통해 그녀는 상을 몇 번 받았다. 1997년에는 서울시민대상 본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아산상 재능나눔상을 수상했다. 상금으로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을 받았는데 대부분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평소 알고 지내던성당에 기부했다. 작년 12월 19일에는 청와대에서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녹음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다 보면 김정숙 씨라는 분과 자주 마주쳐요. 그분은 약시여서 다른 장애인들을 인도하면서 복지관으로 와요. 시각을 제외한 그분들의 감각은 상상 이상으로 발달해 있어요. 어느 틈에 저를 알아보곤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면서 “황임숙 선생님, 김밥 드시고 가세요”라고 소리쳐요. 그러면 다른 장애인들도 제게 얼마나 반갑게 손을 흔드는지 몰라요. 제가 어디 가서 이런 환대를 받겠어요? 지난 30년은 복지관에 조금 도와드리러 갔다가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아온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눈과 몸이 불편해 책을 보고 싶어도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사람들의 절망을 비장애인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황임숙씨의 목소리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힘을 잃지 말고 일어서라며 손을 잡아 주는 따듯한 위로일 것이다.
그녀 또한 봉사의 기쁨 덕에 고희(古稀)를 한참 넘겼으면서도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와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아산의 향기 2015년 여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