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0대 명산 완등한 권택환 씨
비시각장애인도 힘든 국내 100대 명산 완등을 이룬 시각장애인이 있다. 권택환(남, 68세, 전맹) 씨를 만나 등반 시작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등산을 하면서 추억이 참 많아요. 험한 산행 길에서 도시락을 서로 나눠먹을 때, 정상에 올라가서 만세를 부를 때, 완등을 하고 내려오면서 덕담들을 나눌 때가 참 좋았습니다. 특히 오대산에서 노인봉 산장에 피곤한 몸으로 도착했을 때 어르신이 건네주던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요.”
100대 명산을 등반할 정도로 당찬 권 씨도 사실은 40대 시절에 육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원인불명으로 양쪽 눈을 실명한 중도시각장애인이다. 그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처음 산에 오르게 된 것은 아내와 함께 복지관에서 하는 등산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그때 처음 간 곳이 경기도 파주의 감악산이었습니다. 아내는 산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저도 요령을 몰랐죠. 손을 잡고 산을 타는데 바위도 많고 넘어질 까봐 두려웠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보니까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안내자의 가방에 끈을 달아 잡고 등산용 지팡이를 의지하며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잘 잡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저도 등산을 하면서 100대 명산을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갑작스런 시각장애가 권 씨에게 절망을 주었을지언정 산행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의 의지 뒤에는 항상 주변의 좋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다. 아내의 도움뿐 아니라 친동생의 동행과 고향친구의 헌신이 있었다. 산을 잘 타는 친구는 그를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차량으로 데려가서 1박 2일의 산행을 함께해주었고, 마지막 서른 개 산의 등반도 경남에 사는 동생이 함께했다.
“지리산에서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하루에 13시간씩 등반을 했죠. 그때 같이 갔던 젊은 친구들 중에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저 역시도 아침 일찍 출발해서 같이 간 무리 중에 가장 늦게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산행을 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올해 7월 6일, 전남 장흥 천관산 산행이 100대 명산 완등 도전의 피날레였다.
“천관산 정상에서 동생이 저를 위해 안내 표지판에 있는 산의 내력을 읽어 주는데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왔죠.”
어떻게 살아갈까 희망도 없던 시절에 자신을 도왔던 이들 덕분에 산을 오르게 된 이후 권 씨 스스로도 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실명을 하고 3년 정도는 방황을 했죠. 그러다 긍정심리학 책을 많이 접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랑으로 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꾸준히 책도 읽고 말을 하고 다니면서 스스로 뇌에다 주입시켰죠. 활발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7년 하모니카 연주단으로 시작된 봉사활동은 현재 복지관, 요양원, 지역행사에 참여하여 한 달에 10회 이상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15명의 시각장애인들과 5명의 비시각장애인들이 통기타, 오카리나, 톱 연주는 물론 민요나 대중가요를 부른다.
특히, 작년 가을에는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노원구자원봉사센터에 정식 봉사단체로 등록을 했고 그때부터 ‘가우리예술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우리’란 ‘세상의 가운데 땅’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나눌수록 더 행복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뜻이죠. 행사 때마다 플래카드를 거는데 ‘당신들이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남에게 봉사하고 즐거움과 희망을 주며 행복해하는 것을 볼 때, ‘아, 봉사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한편, 권 씨는 배움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예전에 복지관에서 자서전 쓰기 교실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사로 오시는 교수님께 글쓰기를 배우면서 저의 일생에 대해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사이버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었지요.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과 무엇보다 제 자신을 돌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상담심리학과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사이버대를 다닌 덕분에, 낮에는 등산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를 듣는 생활을 꽤 오랫동안 했다.
“시각장애인은 어떤 것을 하든지 간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습관이 있으면 더 즐겁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더라고요.”
무더웠던 지난 여름, 뜨거웠던 100대 명산 완등의 기쁨과 함께 지난 9월에는 가우리 봉사단도 한 요양원의 어르신들과 함께 100회 봉사활동이라는 뜻깊은 결실을 맞이했다.
“이번 10월에는 100대 명산 완등과 가우리예술봉사단의 100회 봉사활동을 기념해 감사축제를 가질 계획입니다. 그동안 저를 도와준 학교 동창들과 봉사단원들에게 식사대접도 하고 축하공연을 여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봉사할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면서 1000회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 그리고 제가 살아온 인생을 에세이와 시로 써서 출간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권택환 씨의 삶은 긍정의 힘으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희로애락을 배움으로 승화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019. 10. 1. 제103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