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활상담사 김기현 박사
“저는 선천적 질환으로 실명을 한 게 아니었어요. 한순간 사고로 실명한 거죠. 너무 막막했고, 좌절감은 말도 못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 실명이 무엇인지, 시각장애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내 삶 자체가 된 ‘실명’과 ‘재활’을 스스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거예요.”
김기현(여, 42세, 시각장애 1급) 박사는 재활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박사는 1994년 턱 부정교합 수술 중 과다출혈로 전신 마비를 겪었다. 천신만고 끝에 운동신경을 회복했지만, 시력은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밤낮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가족과 신앙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러다 2006년 재활상담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김 박사는 보스턴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4년간 4곳에서 재활상담 인턴 경험을 쌓고 마침내 미국공인 재활상담사 자격을 받았다. 이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재활상담 공부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대학 강단에서 재활상담 강의를 맡았고, 의욕적으로 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종로비전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열기도 했다. 김 박사를 만나 재활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상담은 내담자의 감정을 읽고, 분석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입니다”
지난 9월부터 정인욱복지재단(이하 정인욱재단)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 김 박사는 중도 실명인을 포함한 시각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인욱재단은 김 박사의 미국 유학 장학금을 지원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상담 희망자가 정인욱재단(02-723-2356)으로 연락을 하면, 우선 기초상담을 받는다. 상담 희망 내용, 거주지, 대면 상담 여부, 실명 시기, 보행 가능 여부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을 정인욱재단 측에서 맡는다. 이를 토대로 상담 스케줄이 완성되고, 김 박사와 상담자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상담에 대한 내용은 100% 비밀이에요. 내담자와 내담자끼리도 만날 수 없도록 스케줄이 짜입니다. 상담할 때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돼요. 그러나 재활상담이기 때문에 실명 시기 정보는 매우 중요하답니다.”
김 박사는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면 상담을 선호한다. 우선 내담자가 대면 상담을 원하기도 하지만, 상담의 기본은 대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든 상담학회에서든 전화 상담을 상담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전화로 이뤄지는 것은 조언조차도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상담 희망자가 많아서 부득이하게 전화로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점점 줄여가고 있어요.”
상담은 보통 8~10회기로 진행된다. 첫 상담에서는 신뢰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상담을 거듭하며 목표도 설정하고,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된다. 대부분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모르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몇 회기에 걸쳐서 목표 설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김 박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상담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상담은 조언이나 해답 제시가 아닙니다. 심리를 분석하고 반영하고 요약하면서 내담자의 감정을 읽어주는 거예요.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거죠.”
김 박사는 소위 말하는 한국 시각장애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랜 미국 생활과 맹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는 이력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점이 상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저는 내담자가 어떤 맹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안마수련원을 수료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내담자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상담의 최대 강점이죠(웃음).”
* “원활한 상담 활동을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웠답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담자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이다. 내담자의 슬프고 힘든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사는 강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과도한 상담 스케줄은 상담자는 물론 내담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동안 세 곳의 대학 강의와 영어 강의 등으로 일주일에 하루밖에 상담에 할애할 수 없었어요. 상담 희망자는 많은 상황이니 무리한 스케줄을 감당해야 했어요. 상담을 한 시간 하면 한 시간은 충분히 쉬어야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죠. 그러다 보니 내담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있었고, 내담자와 내담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치는 경우도 생기게 됐어요.”
상담에만 집중하기 위해 전문 상담센터를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담센터에서는 무료 상담이 이뤄질 수 없기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뤄지는 상담은 ‘동료 상담’의 영역이에요. 전문적인 심리, 재활상담은 아니지요. 그러나 저도 중도 실명인으로 아픔과 재활의 과정을 겪었잖아요? 물론 제가 전공한 분야와 철학이 다를 수 있지만, 재활상담의 전문성을 접목해 한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의 재활상담은 역사가 길지 않다. 김 박사가 유학을 떠날 당시에는 재활상담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래도 올해 12월에 ‘장애인재활상담사’가 국가자격으로 인정되고, 이에 대한 자격시험이 내년부터 치러질 예정이다. 김 박사는 이 소식을 반기면서도 재활상담이 직업재활에 치중되지 않고 심리상담을 충분히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업재활이 재활의 핵심이지만, 최후의 방편이라고 생각해요. 심리상담은 그야말로 기초죠. 화장에 비유를 한다면 심리상담은 스킨케어 과정이라면 직업재활은 아이라인, 마스카라 등의 색조 화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피부가 예쁘지 않으면 색조 화장을 해도 예쁘지 않아요. 건강한 마음이 선행돼야 직업이든 가정생활이든 자기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김 박사는 한국 사회가 충분한 장점이 있지만, 여유가 없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제가 유학 가기 전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정책이 많이 좋아졌어요. 적어도 중진국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인 것 같아요. 압축 성장이라는 특수한 문화 때문이죠. 남과 비교해서 다르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김 박사는 앞으로 재활상담에 힘쓰며 중도 실명인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꾸는 데도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보다 중도 실명인이 훨씬 많은 상황인데, 중도 실명인을 위한 상담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요. 저는 중도 실명인이면서, 여성이면서, 시각장애인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자립생활센터를 꾸려갈 생각이에요. 재활상담으로 이 사회에 쓰일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웃음).”
김기현(여, 42세, 시각장애 1급) 박사는 재활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박사는 1994년 턱 부정교합 수술 중 과다출혈로 전신 마비를 겪었다. 천신만고 끝에 운동신경을 회복했지만, 시력은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밤낮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가족과 신앙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러다 2006년 재활상담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김 박사는 보스턴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4년간 4곳에서 재활상담 인턴 경험을 쌓고 마침내 미국공인 재활상담사 자격을 받았다. 이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재활상담 공부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대학 강단에서 재활상담 강의를 맡았고, 의욕적으로 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종로비전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열기도 했다. 김 박사를 만나 재활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상담은 내담자의 감정을 읽고, 분석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입니다”
지난 9월부터 정인욱복지재단(이하 정인욱재단)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 김 박사는 중도 실명인을 포함한 시각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인욱재단은 김 박사의 미국 유학 장학금을 지원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상담 희망자가 정인욱재단(02-723-2356)으로 연락을 하면, 우선 기초상담을 받는다. 상담 희망 내용, 거주지, 대면 상담 여부, 실명 시기, 보행 가능 여부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을 정인욱재단 측에서 맡는다. 이를 토대로 상담 스케줄이 완성되고, 김 박사와 상담자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상담에 대한 내용은 100% 비밀이에요. 내담자와 내담자끼리도 만날 수 없도록 스케줄이 짜입니다. 상담할 때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돼요. 그러나 재활상담이기 때문에 실명 시기 정보는 매우 중요하답니다.”
김 박사는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면 상담을 선호한다. 우선 내담자가 대면 상담을 원하기도 하지만, 상담의 기본은 대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든 상담학회에서든 전화 상담을 상담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전화로 이뤄지는 것은 조언조차도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상담 희망자가 많아서 부득이하게 전화로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점점 줄여가고 있어요.”
상담은 보통 8~10회기로 진행된다. 첫 상담에서는 신뢰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상담을 거듭하며 목표도 설정하고,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된다. 대부분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모르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몇 회기에 걸쳐서 목표 설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김 박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상담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상담은 조언이나 해답 제시가 아닙니다. 심리를 분석하고 반영하고 요약하면서 내담자의 감정을 읽어주는 거예요.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거죠.”
김 박사는 소위 말하는 한국 시각장애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랜 미국 생활과 맹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는 이력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점이 상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저는 내담자가 어떤 맹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안마수련원을 수료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내담자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상담의 최대 강점이죠(웃음).”
* “원활한 상담 활동을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웠답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담자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이다. 내담자의 슬프고 힘든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사는 강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과도한 상담 스케줄은 상담자는 물론 내담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동안 세 곳의 대학 강의와 영어 강의 등으로 일주일에 하루밖에 상담에 할애할 수 없었어요. 상담 희망자는 많은 상황이니 무리한 스케줄을 감당해야 했어요. 상담을 한 시간 하면 한 시간은 충분히 쉬어야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죠. 그러다 보니 내담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있었고, 내담자와 내담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치는 경우도 생기게 됐어요.”
상담에만 집중하기 위해 전문 상담센터를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담센터에서는 무료 상담이 이뤄질 수 없기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뤄지는 상담은 ‘동료 상담’의 영역이에요. 전문적인 심리, 재활상담은 아니지요. 그러나 저도 중도 실명인으로 아픔과 재활의 과정을 겪었잖아요? 물론 제가 전공한 분야와 철학이 다를 수 있지만, 재활상담의 전문성을 접목해 한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의 재활상담은 역사가 길지 않다. 김 박사가 유학을 떠날 당시에는 재활상담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래도 올해 12월에 ‘장애인재활상담사’가 국가자격으로 인정되고, 이에 대한 자격시험이 내년부터 치러질 예정이다. 김 박사는 이 소식을 반기면서도 재활상담이 직업재활에 치중되지 않고 심리상담을 충분히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업재활이 재활의 핵심이지만, 최후의 방편이라고 생각해요. 심리상담은 그야말로 기초죠. 화장에 비유를 한다면 심리상담은 스킨케어 과정이라면 직업재활은 아이라인, 마스카라 등의 색조 화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피부가 예쁘지 않으면 색조 화장을 해도 예쁘지 않아요. 건강한 마음이 선행돼야 직업이든 가정생활이든 자기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김 박사는 한국 사회가 충분한 장점이 있지만, 여유가 없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제가 유학 가기 전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정책이 많이 좋아졌어요. 적어도 중진국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인 것 같아요. 압축 성장이라는 특수한 문화 때문이죠. 남과 비교해서 다르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김 박사는 앞으로 재활상담에 힘쓰며 중도 실명인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꾸는 데도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보다 중도 실명인이 훨씬 많은 상황인데, 중도 실명인을 위한 상담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요. 저는 중도 실명인이면서, 여성이면서, 시각장애인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자립생활센터를 꾸려갈 생각이에요. 재활상담으로 이 사회에 쓰일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웃음).”
(2017. 12. 15. 제99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