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엔에서 연설한 ‘메탄올 실명’ 피해자 김영신 씨
“저는 여러분이 쓰는 휴대전화를 만들다가 시력을 잃고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지난 6월 9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UN) 이사회장에서 김영신(남, 29세, 시각장애 2급) 씨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저는 삼성이나 엘지 휴대전화를 만들다가 실명했는데, 삼성과 엘지는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삼성과 엘지가 이번 일에 대해 책임지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은,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분이었다. 몸소 경험한 아픈 현실을 세세하게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꽤나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왜 이 청년은 유엔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까?’
평범하기 그지없던 청년이 산업재해 피해자 대표로 유엔까지 찾아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들어보았다.
* 메탄올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2015년 2월 삼성 휴대전화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김 씨는 감기몸살 기운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이후 일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는 시력이 나빠지는 게 단순히 건강상의 문제라고 보았다. 의사도 6~12개월이 지나면 시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함께 활동하는 노무사님께서 당시에는 메탄올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의사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실명 원인을 알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어요.”
그는 현재 오른쪽 눈의 시력은 없고, 왼쪽 눈의 시력이 남아 있다. 색상과 큰 형태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지만, 계단의 경계나 작은 턱은 보이지 않는다. 밤보다 낮에 색상 구별이 힘들다.
누구라도 고작 3주간 일했던 일터에서 사용했던 메틸알코올(이하 메탄올)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메탄올이라는 물질이 작업에 쓰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일터에서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가공품을 자르고, 가공하는 작업을 했다. 알루미늄을 자를 때 메탄올이 사용됐다. 공정을 마치면 메탄올을 씻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이때 그에게 보호 안경이나 방진마스크는 제공되지 않았다. 작업 장갑뿐이었다. 눈이나 피부에 메탄올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당연히 메탄올이 위험 물질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노동건강연대에서 펴낸 ‘메탄올 급성중독 작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및 사후관리 방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피해자는 모두 여섯 명이고, 이들은 4~5개월 만에 병에 걸렸다. 일주일 만에 병에 걸린 피해자도 있다.
같은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 중에는 위험성이 적은 에틸알코올(이하 에탄올)을 쓰는 곳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일한 곳은 에탄올보다 1/3 싼 메탄올을 사용했다. 원청인 삼성이나 엘지의 신제품 출시 기간에는 더 많은 메탄올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그는 메탄올 피해자가 여섯 명만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처럼 원인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피해 사실을 알고도 신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을 물을 곳은 없다
메탄올 중독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1월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이경하 씨가 메탄올 중독 진단을 받으면서다. 피해자는 나타났지만, 책임을 지려는 곳은 없었다. 어떤 파견업체에서는 몇백만 원의 보상금을 보냈고, 하청업체 사업장에서는 메탄올 사용을 감추었다. 어떤 하청업체 대표는 피해자에게 ‘술을 많이 먹어서’ 혹은 ‘자살 기도를 한 게 아니냐’는 어이없는 이유를 붙여 책임을 회피하려고도 했다.
“세상에 알려지고도 제게 사과를 하거나 연락을 취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어요. 그러다 산재보험 신청을 하려는 과정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삼성과 엘지도 책임을 회피했다. 3차 하청업체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원청 기업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피해자들은 시력을 잃거나 뇌 손상을 입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과 엘지가 노동자들의 처우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연설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가 혼자서 이런 일들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메탄올 실명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이번 유엔 연설도 이곳에서 추진했다.
유엔 연설은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저기 취재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사실 그도 반복된 질문과 대답이 지겹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실명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삼성과 엘지, 정부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는 7월 16일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토크 콘서트에도 참석해 이번 사건의 실상을 밝힐 예정이다.
“제가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산업재해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와 같은 피해자들에게는 용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노동자는 20%에 그친다. 산재로 고통받은 사람이 노동운동가가 되어야만 하는 나라. 산재는 개인의 불행이기만 한 것인가? 김영신 씨가 우리 사회에 거듭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UN) 이사회장에서 김영신(남, 29세, 시각장애 2급) 씨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저는 삼성이나 엘지 휴대전화를 만들다가 실명했는데, 삼성과 엘지는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삼성과 엘지가 이번 일에 대해 책임지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은,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분이었다. 몸소 경험한 아픈 현실을 세세하게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꽤나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왜 이 청년은 유엔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까?’
평범하기 그지없던 청년이 산업재해 피해자 대표로 유엔까지 찾아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들어보았다.
* 메탄올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2015년 2월 삼성 휴대전화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김 씨는 감기몸살 기운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이후 일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는 시력이 나빠지는 게 단순히 건강상의 문제라고 보았다. 의사도 6~12개월이 지나면 시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함께 활동하는 노무사님께서 당시에는 메탄올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의사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실명 원인을 알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어요.”
그는 현재 오른쪽 눈의 시력은 없고, 왼쪽 눈의 시력이 남아 있다. 색상과 큰 형태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지만, 계단의 경계나 작은 턱은 보이지 않는다. 밤보다 낮에 색상 구별이 힘들다.
누구라도 고작 3주간 일했던 일터에서 사용했던 메틸알코올(이하 메탄올)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메탄올이라는 물질이 작업에 쓰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일터에서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가공품을 자르고, 가공하는 작업을 했다. 알루미늄을 자를 때 메탄올이 사용됐다. 공정을 마치면 메탄올을 씻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이때 그에게 보호 안경이나 방진마스크는 제공되지 않았다. 작업 장갑뿐이었다. 눈이나 피부에 메탄올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당연히 메탄올이 위험 물질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노동건강연대에서 펴낸 ‘메탄올 급성중독 작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및 사후관리 방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피해자는 모두 여섯 명이고, 이들은 4~5개월 만에 병에 걸렸다. 일주일 만에 병에 걸린 피해자도 있다.
같은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 중에는 위험성이 적은 에틸알코올(이하 에탄올)을 쓰는 곳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일한 곳은 에탄올보다 1/3 싼 메탄올을 사용했다. 원청인 삼성이나 엘지의 신제품 출시 기간에는 더 많은 메탄올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그는 메탄올 피해자가 여섯 명만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처럼 원인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피해 사실을 알고도 신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을 물을 곳은 없다
메탄올 중독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1월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이경하 씨가 메탄올 중독 진단을 받으면서다. 피해자는 나타났지만, 책임을 지려는 곳은 없었다. 어떤 파견업체에서는 몇백만 원의 보상금을 보냈고, 하청업체 사업장에서는 메탄올 사용을 감추었다. 어떤 하청업체 대표는 피해자에게 ‘술을 많이 먹어서’ 혹은 ‘자살 기도를 한 게 아니냐’는 어이없는 이유를 붙여 책임을 회피하려고도 했다.
“세상에 알려지고도 제게 사과를 하거나 연락을 취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어요. 그러다 산재보험 신청을 하려는 과정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삼성과 엘지도 책임을 회피했다. 3차 하청업체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원청 기업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피해자들은 시력을 잃거나 뇌 손상을 입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과 엘지가 노동자들의 처우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연설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가 혼자서 이런 일들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메탄올 실명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이번 유엔 연설도 이곳에서 추진했다.
유엔 연설은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저기 취재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사실 그도 반복된 질문과 대답이 지겹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실명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삼성과 엘지, 정부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는 7월 16일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토크 콘서트에도 참석해 이번 사건의 실상을 밝힐 예정이다.
“제가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산업재해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와 같은 피해자들에게는 용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노동자는 20%에 그친다. 산재로 고통받은 사람이 노동운동가가 되어야만 하는 나라. 산재는 개인의 불행이기만 한 것인가? 김영신 씨가 우리 사회에 거듭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2017. 7. 15. 제98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