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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인터뷰> 시력을 잃고도 작품 활동 이어가는 박환 화가

작성자 정보문화팀

작성일 2017-09-01 오전 9: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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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인터뷰> 시력을 잃고도 작품 활동 이어가는 박환 화가
작성자 정보문화팀 작성일 2017-09-01 오전 9:42:30 (조회 : 3487)
<인터뷰> 시력을 잃고도 작품 활동 이어가는 박환 화가
 
  최근 개봉한 영화 ‘내 사랑(2016)’의 실제 주인공인 모드 루이스는 캐나다의 나이브(Naive) 화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나이브 화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기존 미술 양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연과 현실 대상에 대해 소박한 태도로 건강한 리얼리즘을 예술의 기초로 삼는 아티스트를 일컫는다. 모드 루이스는 어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아 거동이 불편했고, 혼자 지내는 시간에는 자신이 사는 곳의 풍광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특유의 낙천성 덕분인지 밝고 따뜻한 온기가 뿜어져 나온다.
  한국에도 모드 루이스와 같은 나이브 화가 박환(남, 60세, 시각장애 1급) 씨가 있다. 그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며 35년간 한시도 캔버스를 놓지 않았던 중견 화가다.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화풍을 바꿔온 그는 지난 2013년 사고로 모든 시력을 잃고 다시 한번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최근 작품은 따뜻함과 편안함, 밝음이 녹아 있는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그는 “제가 살고 싶은 곳,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그린다”고 설명한다.
  * “화가로서 가장 빛나던 순간에 사고를 당했어요”
  그림을 처음 그린 건 순전히 재능 때문이었다. 중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그린 정물화를 본 선생님이 크게 칭찬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이전에는 미술 과목을 가장 싫어했었다.
  “정물화를 그리라는데, 어떻게 그리는지도 몰라서 그냥 손 가는 대로 그려서 냈어요. 며칠이 지나고 선생님께서 저를 호명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혼내려는 줄 알았죠. 그런데 그림은 어디서 배웠는지, 언제부터 그렸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꽤 잘 그렸던 거죠(웃음).”
  그렇다고 그림으로 진로를 정한 건 아니었다. 그저 취미로 그림을 그리며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재능은 감출 수 없었다. 군대 제대 후 지인에게 상업미술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때부터 20여 년간 산수화를 그렸다. 그러다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동양화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작품을 시도해봤다. 그러던 중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칠 재료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작업실 가는 길에 돌멩이가 발에 채였어요. 돌멩이가 날아가더니 커다란 나무판에 맞고 튕겨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나무판 색이 참 오묘했어요. 비에 젖고 썩은 베니어합판이었는데,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색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베니어합판을 이용한 서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7년여간의 작업 끝에 2012년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2013년에는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에 12점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시에서 그의 작품은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대사관에서 작품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서양화가로서 다른 나라 진출도 꿈꾸던 호시절이었다. 그때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사고 당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차량을 본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꺼낼 때 기계차로 차량을 펴서 꺼냈을 정도니까요. 의사는 수술을 하고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했대요. 하지만 지금 몸을 움직이고 활동하는 데 문제는 없어요. 의사도 신기해할 정도로요. 하지만 좌측 눈, 코, 귀, 머리의 감각이 없어요. 빛조차 감지가 안 되는 상태로 시력도 잃었고요.”
  * “편안하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곳을 그리게 됐죠”
  그는 실명 후 강원명진학교에서 침술과 안마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그림을 그려온 그림쟁이에게는 용어도 생소하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두 달가량 다니다가 포기했다. 그때 동생이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화가였기에 더욱 그림을 다시 시작하기 힘들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늘 작품에 완벽함을 추구했는데,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두려웠어요. 제가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선 하나를 긋는 데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2014년 8월 그는 실명 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생 해오던 그림 작업이지만, 실명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선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을 손바닥에 그려본 후, 캔버스에 목공본드를 이용해 실을 붙여서 스케치 작업을 한다. 이때 핀셋을 이용해 색상의 구분점을 표시한다. 청바지나 흙, 나무 등을 이용해 질감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런 작업의 반복으로 손과 손톱이 성할 날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그림은 치열한 작업이니까요. 실명 전에는 스케치하고 색을 칠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니까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것을 비관할 때도 많고요. 투덜거리면서 작업을 하는 편이지요.”
  이런 힘든 과정에 비해 그림은 밝고 따뜻하다. 그림 스타일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도시의 소외된 공간이나 현실의 어두움, 치열함 등을 표현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제가 편안하게 아름답게 쉴 수 있는 곳을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주위 분들도 제 그림이 따뜻하다, 편안하다는 평을 많이 해주십니다.”
  그는 올해 1월에는 서울 서초구에서 실명 후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큰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전 전시회에서는 주로 그림 테크닉에 대한 평을 들었다면, 올해 전시에서는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평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저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희망을 보고 간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어요. 제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 기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서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에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작품 활동의 괴로움에 더해 생활의 어려움이 더해져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캔버스와 물감을 사는 것도 버거운 형편이다.
  “방송이나 언론에는 제 일상이 굉장히 윤택하게 조명되어 실제로 힘들게 작품 활동을 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까 더 그런 인식을 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후원도 전무한 상태랍니다.”
  그는 여전히 실명의 고통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 그림을 그려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봐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며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전시를 열 계획은 없지만, 많은 분들에게 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작품이 궁금하면 언제든지 춘천으로 오세요(웃음).”
  문의: 010-2985-9229
(2017. 9. 1. 제9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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