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올해의 장애인상’ 밀알선교단 양남규 팀장
제37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가 가려졌다. 밀알선교단 양남규(남, 56세, 시각장애 1급) 팀장, 서울도서관 사서인 신명진(남, 41세, 지체장애 1급) 씨, 속초시장애인체육회 정호원(남, 32세, 뇌병변장애 1급) 선수가 올해의 주인공이다. 이 중에서 양남규 팀장에게 수상소감을 들어보았다.
* “나의 불편을 해소하려고 나섰던 일이었죠”
양남규 팀장은 현재 방송인으로, 음성 사서함 운영자로, CCM 가수로, 시각장애인 정보접근성 자문 위원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넓은 활동 범위는 굵직한 시각장애인계 인식개선 활동과 궤를 함께했다. 양 팀장은 음성 사서함 운영자들의 모임인 성음회를 결성해 시각장애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앞장서왔다. 보도에 세워진 볼라드 제거 운동으로 보행권 확보에 힘썼다. 은행 ATM의 음성지원 및 버튼 설치로 시각장애인 접근성 보장도 이뤄냈다. 최근에는 방송접근성 제고를 위한 ‘넥스트(일부 방송에서 다음 코너를 소개할 때 ‘넥스트’라는 말과 함께 음악을 내보내고, 문자로만 안내해 시각장애인들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제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제 자신이 불편하니까 다른 시각장애인들도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제 불편이 점차 해소되는 소득을 얻었는데, 여러모로 부족한 제게 이런 큰 상까지 주시니 얼떨떨하네요.”
겸손하게 말을 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결코 쉬운 과정들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말하고 설득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철칙은 폭력이나 거친 방법은 지양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기관을 직접 찾아 불편을 전달하고 설득해야 제대로 개선이 이뤄지고 그와 관련한 문화도 개선된다는 것이다.
“2002년 KBS 제3라디오에 출연할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점자도 음성 안내도 없더군요. 그래서 세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겨우 스튜디오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해당 PD와 시설 담당자를 만나서 직접 불편을 이야기했어요. 시설 담당자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설명하자 수긍했고, 다음 주에 방문했을 때는 엘리베이터에 점자가 붙어 있더군요. 이듬해에는 점자와 음성 안내가 장착된 엘리베이터로 바뀌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청원경찰들이 장애인 응대 에티켓을 자발적으로 배웠어요. 장애인 응대 문화가 KBS에 자리 잡게 되었죠. 지금은 KBS 정문에서 케인을 들고 있으면 스튜디오까지 안내해준답니다(웃음).”
* “시각장애인들도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장애인 불편 개선 활동만큼 나눔의 역사도 깊다. 성음회를 결성하고 시작한 ‘이웃사랑나눔운동’은 한빛맹학교 김종길 어린이의 안암 수술비 모금으로 시작됐다. 전화 사서함 회원들이 모아준 약 780만 원을 김 어린이 어머니께 전달할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때의 780만 원은 상당한 금액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존재로 인식됐지만, 그런 인식을 바꾸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 전화를 통한 모금 이외에도 소아 안암 환우를 위한 공연도 열었죠.”
양 팀장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노래 재능을 뽐냈다. 1974년 전국특수학교 실기경진대회에서 독창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밀알선교단 ‘소리보기’ 팀장으로 분기별로 청주, 청송, 대전, 서울 교도소 등을 찾아 재소자들에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20년째 계속된 일이다. 그는 어떤 일보다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성원하는 일이 자신의 일 중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재소자 중에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해요. 살면서 이만큼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하시고요. 저는 그게 노래가 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도 마음과 혼을 담아서 노래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 느꼈던 그 감동과 마음을 담아서 부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인다고 믿으니까요.”
이런 활동으로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예전에 노래를 부를 때는 나의 슬픔, 비참함, 불행을 이야기했어요. 그런 이야기만 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희망을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곡 스타일도 밝게 만들어봤고요. 그랬더니 실제로 제 자신이 밝아지더라고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점차 주위에 사람들도 모이게 됐어요.”
나눔의 실천과 긍정적인 성격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자산이다. 아버지는 10남매 중 일곱째인 그를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경험하고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주위의 놀림이나 괴롭힘도 지혜롭게 물리쳐 주며 그가 고귀한 존재임을 늘 확인시켜주었다.
“아버지가 어릴 때 저에게 세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시각장애로 겪는 아픔들을 맞볼 수 있게 해줬어요. 세상에서 부딪치고 깨지고 순간은 창피하고, 불편했지만 그런 것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 보여주신 아버지의 헌신과 강인하지만 부드러운 지혜로움을 늘 배우려고 노력했죠. 아버지 덕분에 받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했던 장애인 인식 개선 운동과 나눔 활동, 무엇보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중에서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에 무게를 두고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저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이 상을 주신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했던 대로 상대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시각장애인들의 행복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웃음).”
* “나의 불편을 해소하려고 나섰던 일이었죠”
양남규 팀장은 현재 방송인으로, 음성 사서함 운영자로, CCM 가수로, 시각장애인 정보접근성 자문 위원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넓은 활동 범위는 굵직한 시각장애인계 인식개선 활동과 궤를 함께했다. 양 팀장은 음성 사서함 운영자들의 모임인 성음회를 결성해 시각장애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앞장서왔다. 보도에 세워진 볼라드 제거 운동으로 보행권 확보에 힘썼다. 은행 ATM의 음성지원 및 버튼 설치로 시각장애인 접근성 보장도 이뤄냈다. 최근에는 방송접근성 제고를 위한 ‘넥스트(일부 방송에서 다음 코너를 소개할 때 ‘넥스트’라는 말과 함께 음악을 내보내고, 문자로만 안내해 시각장애인들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제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제 자신이 불편하니까 다른 시각장애인들도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제 불편이 점차 해소되는 소득을 얻었는데, 여러모로 부족한 제게 이런 큰 상까지 주시니 얼떨떨하네요.”
겸손하게 말을 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결코 쉬운 과정들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말하고 설득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철칙은 폭력이나 거친 방법은 지양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기관을 직접 찾아 불편을 전달하고 설득해야 제대로 개선이 이뤄지고 그와 관련한 문화도 개선된다는 것이다.
“2002년 KBS 제3라디오에 출연할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점자도 음성 안내도 없더군요. 그래서 세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겨우 스튜디오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해당 PD와 시설 담당자를 만나서 직접 불편을 이야기했어요. 시설 담당자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설명하자 수긍했고, 다음 주에 방문했을 때는 엘리베이터에 점자가 붙어 있더군요. 이듬해에는 점자와 음성 안내가 장착된 엘리베이터로 바뀌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청원경찰들이 장애인 응대 에티켓을 자발적으로 배웠어요. 장애인 응대 문화가 KBS에 자리 잡게 되었죠. 지금은 KBS 정문에서 케인을 들고 있으면 스튜디오까지 안내해준답니다(웃음).”
* “시각장애인들도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장애인 불편 개선 활동만큼 나눔의 역사도 깊다. 성음회를 결성하고 시작한 ‘이웃사랑나눔운동’은 한빛맹학교 김종길 어린이의 안암 수술비 모금으로 시작됐다. 전화 사서함 회원들이 모아준 약 780만 원을 김 어린이 어머니께 전달할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때의 780만 원은 상당한 금액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존재로 인식됐지만, 그런 인식을 바꾸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 전화를 통한 모금 이외에도 소아 안암 환우를 위한 공연도 열었죠.”
양 팀장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노래 재능을 뽐냈다. 1974년 전국특수학교 실기경진대회에서 독창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밀알선교단 ‘소리보기’ 팀장으로 분기별로 청주, 청송, 대전, 서울 교도소 등을 찾아 재소자들에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20년째 계속된 일이다. 그는 어떤 일보다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성원하는 일이 자신의 일 중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재소자 중에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해요. 살면서 이만큼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하시고요. 저는 그게 노래가 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도 마음과 혼을 담아서 노래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 느꼈던 그 감동과 마음을 담아서 부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인다고 믿으니까요.”
이런 활동으로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예전에 노래를 부를 때는 나의 슬픔, 비참함, 불행을 이야기했어요. 그런 이야기만 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희망을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곡 스타일도 밝게 만들어봤고요. 그랬더니 실제로 제 자신이 밝아지더라고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점차 주위에 사람들도 모이게 됐어요.”
나눔의 실천과 긍정적인 성격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자산이다. 아버지는 10남매 중 일곱째인 그를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경험하고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주위의 놀림이나 괴롭힘도 지혜롭게 물리쳐 주며 그가 고귀한 존재임을 늘 확인시켜주었다.
“아버지가 어릴 때 저에게 세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시각장애로 겪는 아픔들을 맞볼 수 있게 해줬어요. 세상에서 부딪치고 깨지고 순간은 창피하고, 불편했지만 그런 것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 보여주신 아버지의 헌신과 강인하지만 부드러운 지혜로움을 늘 배우려고 노력했죠. 아버지 덕분에 받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했던 장애인 인식 개선 운동과 나눔 활동, 무엇보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중에서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에 무게를 두고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저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이 상을 주신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했던 대로 상대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시각장애인들의 행복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웃음).”
(2017. 5. 1. 제97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