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전에세이 펴낸 한시련 김갑주 광주지부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김갑주(남, 54세, 시각장애 1급) 광주지부장이 지난 5월 자전적 내용을 담은 에세이 ‘어둠 속의 빛을 찾아’를 펴냈다. 그는 책머리에서 ‘이 세상에 작은 벽돌 한 장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내놓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작은 벽돌 한 장’의 의미는 무엇인지 김 지부장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 “타고난 사업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시작한 일이죠”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김 지부장은 대학 시절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꿈 많은 20대 청년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일이었다. 그는 실명 직후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다른 시각장애인과 교류하면서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실명 당시에 저는 이 세상에 저 혼자만 시각장애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번도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만나고 왠지 모를 위안도 얻었고, 저보다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는 교사의 꿈을 키우기도 하고, 일반 기업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그 밖에도 많은 곳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는 과감하게 음식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사업이었던 ‘가톨릭다방’의 경영 노하우를 토대로 1992년 ‘두메야채잔치’를 세웠다. 지금은 ‘두메푸드시스템’이라는 상시 고용인 130여 명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런 성과 앞에서도 그는 본인이 타고난 사업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거죠. 사업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가진 적성이나 창의력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업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사업체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법정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 중에 재기하는 기업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쓰러진 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는 꼬박 36개월이 걸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자신의 식당을 내어준 친구, 계약을 유지해준 거래처, 월급과 시간을 양보해준 직원들 등등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런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공식적으로 시각장애인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한시련 지부장 선거에 나섰다. 2013년 황선권 전 회장의 조기 퇴임으로 이뤄진 보궐선거에서 단독 후보로 당선이 됐다.
한시련과 그의 인연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가 실명하고 처음 찾아갔던 곳이 바로 한시련(전 전남맹인복지협회)이었고, 점자를 배우고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사귀면서 자존감을 키운 곳도 이곳이었다. 그는 그런 애정으로 광주 지역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청취하며 알뜰히 보살폈다고 자부했다.
* “시각장애인계도 외연 확장에 힘써야 합니다”
중도시각장애인 중에는 시각장애인계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온전히 함께 어울리며 이해하기 위해 안마도 배웠다.
“시각장애인계가 조금은 폐쇄적인 면이 있지요. 그런데 안마를 배우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맹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에요. 시각장애인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가 선행되어야 해요.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활동, 스포츠, 교육 등등이죠.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시각장애인도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한시련이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예산이 시각장애인 쪽에 적게 배당되는 것은 적극적인 연구와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시련이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직선제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보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친목과 전체적인 시각장애인의 이익은 떼어놓고 보아야 합니다. 정해진 예산과 정책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대사회, 대경제, 대정부에 어떻게 응할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해요. 그런 의미로 시각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직접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직접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니까요.”
그는 3년 전 28억이었던 광주지부 예산을 7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밖으로 눈길을 돌린 덕분이다.
“시각장애인의 일방적인 권리 주장과 혜택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베풀고 나누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선행되어야 해요. 올해 초부터 광산구 월곡동에 정착한 고려인들과 교류를 시작했어요. 강제 이주의 참혹함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분들이죠. 이분들의 회복이 우리 사회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고려인들과 공동사업을 하거나 공연을 펼치며 관계를 공고히 할 계획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인식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사회적협동조합 ‘어둠 속의 빛’을 세우고 블라인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식사를 하며 시각장애인의 느낌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사회를 보고 악기 연주도 하고, 시 낭송도 선보인다. 한 달에 두 번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
“조만간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제 색소폰 연주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웃음).”
블라인드 레스토랑과 자서전 편찬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는 이 자서전이 정안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의 생각을 알려주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죠. 저는 실명을 겪기도 했고, 사업에도 실패해 봤어요. 무수한 일들을 겪고도 기적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당장은 힘들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답니다(웃음).”
* “타고난 사업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시작한 일이죠”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김 지부장은 대학 시절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꿈 많은 20대 청년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일이었다. 그는 실명 직후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다른 시각장애인과 교류하면서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실명 당시에 저는 이 세상에 저 혼자만 시각장애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번도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만나고 왠지 모를 위안도 얻었고, 저보다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는 교사의 꿈을 키우기도 하고, 일반 기업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그 밖에도 많은 곳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는 과감하게 음식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사업이었던 ‘가톨릭다방’의 경영 노하우를 토대로 1992년 ‘두메야채잔치’를 세웠다. 지금은 ‘두메푸드시스템’이라는 상시 고용인 130여 명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런 성과 앞에서도 그는 본인이 타고난 사업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거죠. 사업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가진 적성이나 창의력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업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사업체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법정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 중에 재기하는 기업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쓰러진 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는 꼬박 36개월이 걸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자신의 식당을 내어준 친구, 계약을 유지해준 거래처, 월급과 시간을 양보해준 직원들 등등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런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공식적으로 시각장애인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한시련 지부장 선거에 나섰다. 2013년 황선권 전 회장의 조기 퇴임으로 이뤄진 보궐선거에서 단독 후보로 당선이 됐다.
한시련과 그의 인연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가 실명하고 처음 찾아갔던 곳이 바로 한시련(전 전남맹인복지협회)이었고, 점자를 배우고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사귀면서 자존감을 키운 곳도 이곳이었다. 그는 그런 애정으로 광주 지역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청취하며 알뜰히 보살폈다고 자부했다.
* “시각장애인계도 외연 확장에 힘써야 합니다”
중도시각장애인 중에는 시각장애인계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온전히 함께 어울리며 이해하기 위해 안마도 배웠다.
“시각장애인계가 조금은 폐쇄적인 면이 있지요. 그런데 안마를 배우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맹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에요. 시각장애인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가 선행되어야 해요.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활동, 스포츠, 교육 등등이죠.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시각장애인도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한시련이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예산이 시각장애인 쪽에 적게 배당되는 것은 적극적인 연구와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시련이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직선제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보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친목과 전체적인 시각장애인의 이익은 떼어놓고 보아야 합니다. 정해진 예산과 정책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대사회, 대경제, 대정부에 어떻게 응할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해요. 그런 의미로 시각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직접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직접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니까요.”
그는 3년 전 28억이었던 광주지부 예산을 7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밖으로 눈길을 돌린 덕분이다.
“시각장애인의 일방적인 권리 주장과 혜택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베풀고 나누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선행되어야 해요. 올해 초부터 광산구 월곡동에 정착한 고려인들과 교류를 시작했어요. 강제 이주의 참혹함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분들이죠. 이분들의 회복이 우리 사회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고려인들과 공동사업을 하거나 공연을 펼치며 관계를 공고히 할 계획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인식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사회적협동조합 ‘어둠 속의 빛’을 세우고 블라인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식사를 하며 시각장애인의 느낌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사회를 보고 악기 연주도 하고, 시 낭송도 선보인다. 한 달에 두 번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
“조만간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제 색소폰 연주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웃음).”
블라인드 레스토랑과 자서전 편찬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는 이 자서전이 정안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의 생각을 알려주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죠. 저는 실명을 겪기도 했고, 사업에도 실패해 봤어요. 무수한 일들을 겪고도 기적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당장은 힘들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답니다(웃음).”
(2017. 7. 1. 제980호)


